사람향기

고구마 모종 - 영농일지 2

구름뜰 2015. 5. 7. 23:01

 

 

겨울 상추 좀 먹어야겠다고 지푸라기를 덮어둔 산 아래 밭에

상추 어루만지러 어머니 가시고

빵 딸기우유 사서 뒤 따라 어머니 밟으신 길 어루만지며 가는데

농부 하나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다

머리 위로 까치 지나가다 똥을 찍 갈겨도 혹시 가슴에 깻잎 심어두어서

까치 똥 반가이 거두는 것인지

피하지 않는다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 서 있을 줄 알아야 농부인 것일까

내가 어머니에게 빵 우유 드리면서 손 한 번 지그시 어루만져 보는 것 처럼

그도 뭔가 어루만지고 있긴 한데

통 모르겠다

뭐 어쨋거나

달이 지구를 어루만지듯 우주가 허공을 어루만지듯

그것을 내가 볼 수 없듯이

뭘 어루만지고 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루만지는 경지라면

나도 내 마음 속에 든 사람 꺼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

서 있고 싶다

그냥 멀찍이 서서 겨울 밭처럼 다 비워질 때까지 그 사람의 배경 되는 것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싶다

앞으로는

참을 수 없이 그대를 어루만지고 싶으면

어떤 길을 가다가도 길 가운데 사뭇 서야겠다

상추 한 아름 받쳐들고 내려오며 보니 마른 풀도 사철나무도 농협창고도

지그시 지그시 오래 서 있었다

 

박형권의 '우두커니'라는 시다

 

이 밭의 주인인 아이의 할아버지는 날마다 이 밭에 나와서 우두커니도 하고 돌을 가려내기도 하고 물을 나르기도 한다.

 

 

 

 

씨뿌리는 손길!. 

흙을 믿고 하는 일에는 잡념이 없다.

하늘,바람,구름도 알아서 해 줄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수시로 잡념이 생긴다

무엇때문일까

한결같지 않아서 일까

한결같지 않은 것을 인정하면 잡념이 안 생길까

그렇지도 않다.

 

알아도 잘 안되고 몰라서도 안되는 것이 어디한두가진가!

사람 마음만큼 요상한 것도 없으리라. 

사람이 나무나 산을 보고 배워야 하는것이있다면

그들은 평가하지 않으며 속이 없거나 

속을드러내지 않는다는거다.



 

 

 

 

 

 

 

 

 

 

 

 

고구마 모종을 10단이나 했다. 

구미에는 수점마을 고구마가 유명하다.

그 동네 터가 좋은지 순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10개의 두둑중에 6줄을 심었다. 2줄은 호박고구마, 나머지 2줄은 물고구마 순을 모종했다.

 

호박고구마는 모종 줄기가 약간 자줏빛을 띄었다

400평에 온갖 작물 다 심었지만 고구마가 제일 많다. 

 

멧돼지 한데 뺏기지만 않는다면 가을에 고구마 팔러 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산그림자가 5시만 넘으면 서녘에서 내려오는 곳이라 낮도 길고 일하기도 좋다. 

해거름에 모여서 2시간 반정도 걸렸다.  

 

저  산아래 뒷 풍경은 몇년전에는 분명 산이었고 나무들도 무성했는데. 

텃밭이 산으로 올라가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의 동맥을 끊듯이 나무도 밑둥치에 장난을 치면 고사한다고 한다.

나 좋자고 저러는 일을 보는 일이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심고 물주고 다시 북을 돋우고. 알뜰하고 살갑게 모종을 다뤘다. 

기운빠져서 시들어 누워 있지만 아마도 한밤 자고 나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날거라는 확신이 있다. 

 

 

 

 

 

 

며칠전에 심은 고추모종은 요렇게 자리를 잘 잡고 꽃도 피우고 있었다.

 

 

 

 

 

 

바쁜시간 쪼개서 나와준 이가 고맙다. 

함께 시작한 일이라 내가 안하면 그 만큼 다른 사람이 해야하므로 일이란 것이 여축없다.

 

 

 

 

무슨일이건 좋은 일에 함께하기가 쉽다.

 품앗이는 힘든일을  함께해서 힘을 드는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  

 

 

 

 

 

 

 

 

 

 

..

 

요녀석은 차마 밭에는 못들어오고, 매번 지 어미새참들고 오는데 따라와서 밭가에서 우두커니다

 

이 아이의 눈에 이 밭은,  어른들은 어떻게 보일까,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흙을 어루만지는지 왜 모두 저기서 놀고 있는지 알까!

 

제 어미가 고구마라고 설명은 해주는 것 같았는데 뭔수로 알아들을까. ㅠㅠ


마음이 동해 갔지만 어쩌지 못할때 쓰는 말

몸이 마음보다 먼저 달려온 것 같기도 하고,

마음뿐이고 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이르는 말 같은 우두커니!

우두커니가 대상을 어루만지는 일쯤은 된다는 것과

그냥 보기만 해도 어루만짐이 되는 대상이 있다는 건

봄 새순같은 일이다. 

 

할아버지도 손자도 여기와서 노는 동안, 보이지 않는 뿌리도 꽃들도 열매도 영글어 갈 것이다.

함께하는 우리도 영글어 갈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