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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사랑
구름뜰
2015. 5. 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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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내내 사랑해왔다. 샤프를 좋아하고, 캐릭터가 그려진 메모지를 모으고, 열쇠 달린 일기장을 좋아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등 언제나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고 지냈다.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은 끊이지 않았지만 사랑의 대상은 항상 변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이 대상도 영원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나는 영원히 무언가를 사랑하겠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 같은 것도 생겨났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만들어낸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대’일 것이다.
어떤 대상은 개개인에게 똑같이 다가오지 않는다. 검정 바탕 위의 회색과 흰색 바탕 위의 회색이 같은 느낌일 수 없듯이. 우리는 늘 자신의 관점으로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같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밝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둡게 존재하게 된다. 불편의 대상 또한 다르지 않다. 대상은 그것을 마주하는 나의 관점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삶을 만들며 지속하게 하고 또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대상은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우리 인식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 대상에 대한 태도는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마법에 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에 빠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하게 하지만, 자신의 마법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영웅’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신난다.
목이 말라 샘으로 간 나르키소스는 물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이를 보게 되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손을 뻗으면 물결이 일고 사랑하는 이는 사라져버린다. 아, 그 마음이 어땠을까. 그는 결국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끝나지 않을 사랑을 하는 우리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여전히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이 자신임을 모르고 잡으려고 하는 나르키소스로 머물 것인가.
-손노리 <시각소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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