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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칼럼] 비수도권이 궐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

구름뜰 2015. 5. 29. 10:39

 

 

 

 

 
#‘수도권규제완화 반대·균형발전촉구 1천만명 서명운동’.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서명지가 눈길을 끌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세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20명 분의 서명지가 빼곡히 찼다. 많은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게 놀랍다. 왜 서명을 해야 하는지도 널리 알려졌을 게다. 자연 효과도 일석이조였다. 엘리베이터,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거나 혹은 눈길을 둘 데 없는 ‘죽은 공간’으로 어려워했는데. 생각하고 결단하며 비수도권이 총궐기하자고 하니, 이번엔 뭔가 큰일을 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로 온 몸이 저릿저릿해 오지 않는가.

#경북대 교수와 학생, 동문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경북대 총장임용을 촉구하는 범비상대책위원회’는 총장임용촉구 탄원서 제출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가 지난 23일까지 1만3천여명의 동참자를 이끌어 냈다. 서명운동을 전개한 지 보름 만이다. 비대위는 개교기념일인 28일 교육부와 국회, 청와대를 방문해 탄원서와 서명지를 제출하고 항의집회를 가졌다.

지방의 위기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 위에서 든 두 사례가 그 여실한 증거다. 전자는 대구·경북 등 14개 시·도 등으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주도했다. 비수도권 모든 지자체가 들고 일어나 전방위로 주민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나섰다. 후자는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총장임용제청을 거부하고 있는 교육부의 부당한 처사를 규탄한다. 둘 다 지방이 중앙의 횡포에 대항해 일어난 항거이자 불복종운동이다.

지방의 요구는 비수도권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중앙정부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지방정부 아니던가. 죽느냐 사느냐 기로(岐路)에선 무서운 게 없다. 이같이 절박한 아우성은 자치 시행 이후 사상 초유의 일이다. 최근 정부의 그린벨트 규제완화 정책 역시 수도권 내 공장 증축을 허용하고 수도권에 투자를 집중시키는 조치다. 규제완화가 수도권에 더 많은 집중과 사회적 비용유발을 초래하면서 국론을 양분시키고 있다는 말은 교과서에서나 유효하다. 백번 말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로 일관하는 중앙과 수도권에는 실력행사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수도권은 현행 법규만으로도 생산거점을 무차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15조6천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규모의 반도체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보라. 구미의 LG 디스플레이 등 기존 지방에 있던 생산거점이 수도권으로 회항하는데, 정부는 설상가상 이런 수도권 유턴기업들에 재정지원을 허용하겠다 한다. 이러니 동양대 등 지방대학들도 덩달아 수도권 이전을 검토하고, 지방은 또 이를 막기 위한 법안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집토끼 지키기에만도 참으로 피곤한 지방이다.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정책은 초라하거나 전무하다시피 하다. 박 대통령의 공약인 지방 거점대학 육성정책은 실종되고, 교육부의 지방대 자율박탈 정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방을 영원한 졸(卒)로 보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횡포다. 거점 중심의 국토개발과 특성화공대 육성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균형발전정책은 지금 봐도 탁월한 국정철학이다. 역으로 박근혜정부는 왜 분권과 균형에 역주행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비수도권은 이제 차별 불감증에서 깨어났다. 박근혜정부의 수도권 편중정책이 지방의 휴면(休眠)을 깨웠다. 이를 좌시하다가는 지방경제가 송두리째 붕괴할 게 뻔하다는 위기의식은 기폭제가 됐다. 지방의 생존패러다임과 행동양식을 확 바꿔야 할 때다. 균형발전의 가치는 더 이상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떨치고 일어나 쟁취하는 게 지방의 유일한 생로(生路)다. 국토균형발전과 교육자율이란 헌법적 가치마저 부정하고 훼손하는 정부와는 정면대결 외에 달리 길이 없다. 지금은, 깨어난 지방의 주민의식이 행동으로 뭉칠 때다.조정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