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 김행숙(1970~ )
김행숙의 화법은 낯설고 모호하다. 발이 녹고 무릎이 없어지는 세계는 어떤 세계를 말하는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라는 단서에 기댄다면, 그것은 우리를 범속한 평면에 가두는 세계다. 그 평면을 깨고 도약하는 “검은 돌고래”는 무의식 안에 숨은 열망을 보여주는 것일까?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일지라도 솟구쳐 오르는 다정함은 키우고 장려해야 할 인류의 덕목이다. 그런 덕목들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당신에게] 한없이 다가”가야 한다. 다정함이야말로 삶에 의미의 빛을 더 비추고 우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시인>
**김행숙 시인이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으며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 오를 때'라며 '다정함'이라는 시제를 풀어낸 것을 장석주 시인은 '솟구쳐 오르는 다정함'이라 했다.
'솟구쳐 오르는 다정함!' '
삶에 의미와 빛!'
작고 여린것,
부드러운 것,
새순 같은 것,
어느 동화였던가
바람과 햇님이 나그네 옷 벗기기 내기를 한다.
바람이 먼저 나그네에게 불어왔다.
나그네는 옷을 벗는게 아니라 더 힘껏 옷을 감쌌다.
다음 햇님 차례였다.
나그네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 따뜻함에
우리는 강한 것에 영향 받는 것 같지만
실은 다정하고 부드럽고 여린 것에 약하다.
잘 드러나지 않을 뿐
강한것 앞에서는 그런 척할 뿐이거나
또는 그리해야 될것같다는 언저리까지만 끌고 갈 뿐이지
실제로 그리되도록 하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여린것이다.
그 만큼 상대적이다.
어린 아이 앞에서 무장해제 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