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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인의 살림 냄새
구름뜰
2016. 6. 29. 07:38
한 지인은 “서영교 의원이 저지른 특권 남용의 내용을 보면 왠지 짠하다”고 했다. 서 의원은 지금 ‘갑질 6관왕’ 등으로 지칭되며 여론 질타의 한복판에 있는 이다. 그런데도 짠한 이유가 그의 비리에 짙게 배인 ‘살림의 냄새’ 때문이라고 했다.
로스쿨에 가려는 딸을 자기 사무실 인턴으로 채용하고, 동생과 오빠를 각각 5급 비서관과 후원회 회계책임자에 앉히고, 변호사 남편을 검찰 간부들과의 회식에 데려가고, 4급 보좌관 월급에서 후원금을 떼고….
논문 표절 의혹을 빼면 모두 자식 앞날을 걱정하는 모성애와 가족의 생계를 챙기고 푼돈에 바들바들 떠는 ‘살림하는 주부의 애환’ 그대로라는 거다. 현금을 차떼기나 사과상자로 받는 남성 정치인들의 정경유착 비리와는 다른 그 ‘사소함’이 서글프다고도 했다.
그의 말에서 ‘모성애’와 ‘살림’이라는 말이 확 꽂혔다. 이는 우리네 고달픈 삶을 지탱케 하는 엄마의 힘을 예찬하는 말이어서다. 자식 일에 사생결단하는 모성애와 콩나물 100원어치 사면서 50원을 깎아 가며 가난한 식탁을 책임지는 살림의 애환은 가족을 위한 숭고한 ‘헌신’의 상징으로 꼽혔고, 여성들에게 권장된 가족 중심주의 덕목이었다.
또 우리 사회엔 뿌리 깊은 ‘모성애 신화’가 있다. 모성애는 무조건 칭송해야 한다는 강박. 여성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품어 안고 헌신할 거라는 기대감.
한데 여성의 ‘사회적 모성애’는 물론 마더 테레사처럼 실천한 이도 있지만 현실에선 흔치 않다. 오히려 자기 자식의 이해에 반하면 남의 자식을 해코지라도 하는 이기심으로 모성애가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살림도 그렇다. 콩나물 50원을 깎는 건 콩나물 장수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빼앗는 거다.
이 신화가 사회적 관점에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가족주의는 내 가족이 아닌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모성애와 살림에 대한 헌신은 ‘이타적 헌신’이 아니라 ‘이기적 헌신’이다. 이는 여성의 역할이 가족 울타리 안에서만 맴돈 전통사회에선 가족을 지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을 거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이 사회로 확산되는 지금은 오히려 사회의 기대에 역행하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거다.
서 의원은 국민의 세금과 지지를 발판으로 자기 가족의 이익부터 챙기는 ‘패밀리 비즈니스’를 벌였다. 서 의원은 나름 국회의원들 중에선 정의감이 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가 악행임을 알고도 저질렀다기보다는 전근대적 가족주의 혹은 모성애나 주부의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해 죄의식 없이 가족부터 챙기려 든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여성 정치인에게 어른거리는 살림의 그림자는 비단 서 의원만은 아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낸 것도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사람의 수표가 한 전 총리 여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증거 때문이었다. 총리까지 지낸 그와 가족의 가난이 인간적으로 짠하긴 하다.
그럼에도 그 짠함이 ‘약탈적 가족주의’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 특히 그들은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국민이 정치인을 뽑아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건 그에게 국민을 위한 ‘이타적 헌신’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느 집안 아낙처럼 제 식구나 챙기며 나랏돈과 특권을 이기적인 가족주의 실현에 쓴다면 국민이 왜 그를 부양해야 하는가.
또 서 의원 사건이 서글픈 건 세간에 여성 정치인은 생계형 비리를 쉽게 저지른다는 의심을 키운 대목이다. 이제 막 확장되는 여성 정치를 해친 행위다. 이 사건으로 얻은 교훈도 있다.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건 성차별 문화만이 아니라는 것. 우리 의식에 강고하게 뿌리내린 모성애와 가족주의 신화도 건설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족 사랑은 가정 안에서 해야 한다. 가족애를 사회로 끌고 나오는 순간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다. 이건 남녀 모두 그렇다.
양선희 논설위원
로스쿨에 가려는 딸을 자기 사무실 인턴으로 채용하고, 동생과 오빠를 각각 5급 비서관과 후원회 회계책임자에 앉히고, 변호사 남편을 검찰 간부들과의 회식에 데려가고, 4급 보좌관 월급에서 후원금을 떼고….
논문 표절 의혹을 빼면 모두 자식 앞날을 걱정하는 모성애와 가족의 생계를 챙기고 푼돈에 바들바들 떠는 ‘살림하는 주부의 애환’ 그대로라는 거다. 현금을 차떼기나 사과상자로 받는 남성 정치인들의 정경유착 비리와는 다른 그 ‘사소함’이 서글프다고도 했다.
그의 말에서 ‘모성애’와 ‘살림’이라는 말이 확 꽂혔다. 이는 우리네 고달픈 삶을 지탱케 하는 엄마의 힘을 예찬하는 말이어서다. 자식 일에 사생결단하는 모성애와 콩나물 100원어치 사면서 50원을 깎아 가며 가난한 식탁을 책임지는 살림의 애환은 가족을 위한 숭고한 ‘헌신’의 상징으로 꼽혔고, 여성들에게 권장된 가족 중심주의 덕목이었다.
또 우리 사회엔 뿌리 깊은 ‘모성애 신화’가 있다. 모성애는 무조건 칭송해야 한다는 강박. 여성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품어 안고 헌신할 거라는 기대감.
한데 여성의 ‘사회적 모성애’는 물론 마더 테레사처럼 실천한 이도 있지만 현실에선 흔치 않다. 오히려 자기 자식의 이해에 반하면 남의 자식을 해코지라도 하는 이기심으로 모성애가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살림도 그렇다. 콩나물 50원을 깎는 건 콩나물 장수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빼앗는 거다.
이 신화가 사회적 관점에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다. 가족주의는 내 가족이 아닌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모성애와 살림에 대한 헌신은 ‘이타적 헌신’이 아니라 ‘이기적 헌신’이다. 이는 여성의 역할이 가족 울타리 안에서만 맴돈 전통사회에선 가족을 지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을 거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이 사회로 확산되는 지금은 오히려 사회의 기대에 역행하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거다.
서 의원은 국민의 세금과 지지를 발판으로 자기 가족의 이익부터 챙기는 ‘패밀리 비즈니스’를 벌였다. 서 의원은 나름 국회의원들 중에선 정의감이 강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가 악행임을 알고도 저질렀다기보다는 전근대적 가족주의 혹은 모성애나 주부의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해 죄의식 없이 가족부터 챙기려 든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여성 정치인에게 어른거리는 살림의 그림자는 비단 서 의원만은 아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대법원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낸 것도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사람의 수표가 한 전 총리 여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증거 때문이었다. 총리까지 지낸 그와 가족의 가난이 인간적으로 짠하긴 하다.
그럼에도 그 짠함이 ‘약탈적 가족주의’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 특히 그들은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국민이 정치인을 뽑아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건 그에게 국민을 위한 ‘이타적 헌신’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느 집안 아낙처럼 제 식구나 챙기며 나랏돈과 특권을 이기적인 가족주의 실현에 쓴다면 국민이 왜 그를 부양해야 하는가.
또 서 의원 사건이 서글픈 건 세간에 여성 정치인은 생계형 비리를 쉽게 저지른다는 의심을 키운 대목이다. 이제 막 확장되는 여성 정치를 해친 행위다. 이 사건으로 얻은 교훈도 있다. 여성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건 성차별 문화만이 아니라는 것. 우리 의식에 강고하게 뿌리내린 모성애와 가족주의 신화도 건설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족 사랑은 가정 안에서 해야 한다. 가족애를 사회로 끌고 나오는 순간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다. 이건 남녀 모두 그렇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