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들이 - 하늘아래낙원 (대한 수목원)
봄!
간질 간질 가만 있지 못할 것 같은
가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꽃을 품은 나뭇가지가 재채기 할 것 같은
바람이 오면 저들끼리 밀어를 속삭일 것 같은
성급한 녀석들 더 기다려야 한다고 달래고 있을 것 같은 봄..
흙은 또 어떨까
겨우내 얼다 녹기를 반복하다가
녹은 물이 얼지 않고 대지를 적셔 주었을 게고,
흙은 그 물길로 한결 헐거워졌으리라.
헐거워진다는 건 수월해진다는 것.
세상의 무수한 촉들을 위하여
물길이 먼저 생겨나는 것이리라..
봄!
훈풍에도 생기와 물기가 내 안에도 올라오는 것 같다.
삼월도 어느 듯 중순!
오늘은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수목원(하늘아래낙원)엘 다녀왔다.
이러한 일탈은 다른 말로 충전이다.
여행은 공간 탈출이고, 일상은 공간 반복 아닐까.
낙원에 들어서고 2층 카페로 오르면서 '우공이산'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옛날 중국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산이 막혀 왕래가 불편하자 산을 옮기기로 마음 먹은 이야기. 친구가 그만 둘것을 권하자 우공은 "나는 늙었지만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을 것이다. 산은 불어나지 않을 것이니 대를 이어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깍여 평평해질 것이다." 라는 설화다.
세상이 말하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기준은 절대진리가 아닌 경우도 많다. 성급한 결과보다 우직이 밀고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한 의지와 신념에 관한 고사다. 이 곳 '하늘낙원'을 만든 손길도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고 이 공간을 꾸몄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렇게 올 수 있음은, 그 마음의 씨앗이 먼저 심어진 덕분이니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지를 한 나무 밑가지가 남근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살아 있는 나무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저 나무 밑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갈 수록 더 자랄텐데 어떻게 자라라는 건지.. .
이렇게 칼을 들이대는 일이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인지
무슨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재미를 위한 일인지,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화한건지,,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본 그 어떤 상징물보다 잔인한 모습이다.
이 수목원은 동구 중대동에서 팔공산 가는 길 우측에 있다.
개방된 지 삼년정도 되었고, 80만개 넘는 돌과 1700여 그루에 이르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있다고 한다. 주인장이 초등학교 시절, 어른이 되면 이곳에 집 짓고 살아야 겠다는 꿈을 이룬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1991년에 이곳에 첫발을 디뎠고 26년 정도 흐른 셈이다.
이 유물들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었을까.
2층에 골동품을 진열해 놓은 곳이 있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두어시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차양막을 둘렀지만 살풋 단잠 자고 싶을 만큼 얇은 이불 덮은 듯 포근하고 감미로운 햇살이었다.
'장미 한송이 건네준 이가 강산이 두 세번 바뀌도록 잊히지 않는 얘기,
나이 들수록 소통이 쉬워야 하는 데 그게 정작 부부간에 잘 안되는 것에 대한 얘기,
그리움은 함께 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온다고,
결국, 억압이나 금기가 없었다면 욕망도 남을리 없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등,
나이가 주는 고마움, 어제는 잘 몰랐던 것을 시간이 지나면 어제보다는 잘 알게 된다.
오늘이 더 생기로워야 하는 이유다.
2층 찻집에서 본 풍경이다.
발아래 파계사 오르는 길이 보인다.
지대가 가파르고 협소한 곳에 자리잡아서 조망이 좋다.
자연에 사람의 정성이 더해지면 편리와 효용성에서
놀라운 작품이 탄생한다.
오종종한 항아리들의 도열!
자연을 소재로한 물건들은 대체로 어디에 두어도 제 태생이 그렇듯 참 자연스럽다.
생각
자연아 말해다오
내가 가는 길을
나는 너를 위해
손 발이 다 닳도록
가꾸었노라
여기에 오는
모든 이에게
말없는 자연을
가꾸어 달라고
그리고 버리지 말라고
꼭 전해다오
-石松
주인장 호가 '석송'인지 모르지만 이 글귀는 주인장의 마음 같다.
이 많은 다듬잇돌은 어디에서 왔을까
효용성보다 추억의 물건으로 소용되는 것들..
그냥 돌을 쌓아 놓은 것과
다듬잇돌을 쌓아놓은 것은 느낌이 다르다
저것이 용도를 다하는 동안에 가진 역사는 또 얼마나 다양할 꼬
시어머니의 노련함앞에서 갓 시집온 어린 며느리의 애환도 있겠고
어느 서슬프런 가문의 혼도 있겠고
지아버에게 드릴 정성으로 다듬잇돌을 기꺼이 다 받아들인 돌도 있으리라.
돌이지만 돌로만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은 그 대상이 가진 모양과 색을 넘어선다.
돌덩이도 이런데 사람임에는 말해 무엇하리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그리움'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나오는 시다.
요즘 읽고 있는 시집이 좋아서 이곳에다 몇편을 더 올려본다.
말보다 시가 편할 때가 있다.
그러라고 시인들이 시를 써주는 지도 모른다.
읽다보면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온다.
함께 읽으면 모두에게 오는 걸 느끼기도 한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모여서
좋은 시를 읽어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 된다.
돌아오면서 기분이 달라지는 경우를 경험해 본 적 있는데
대부분 그런 모임을 가지고 돌아서 오는 길에서 였다.
풀꽃1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꽃 피우는 나무/나태주
좋은 경치 보았을 때
저 경치 못 보고 갔다면
어찌했을까 걱정했고
좋은 음악 들었을 때
저 음악 못 듣고 세상 떴다면
어찌했을까 생각했지요
당신, 내게는 참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하고 이 세상 흘러갔다면
그 안타까움 어찌했을까요
당신 앞에서는
나도 은근히 근지러워
꽃 피우는 나무
지금 내 앞에 당신 마주 있고
당신과 나 사이 가득
음악의 강물이 일렁입니다
당신 등뒤로 썰렁한
잡목 숲도 이런 때는 참
아름다운 그림 나라입니다.
외롭다고 생각할 때일수록/나태주
외롭다고 생각할 때일수록
혼자이기를,
말하고 싶은 말이 많은 때일수록
말을 삼가기를,
울고 싶은 생각이 깊을수록
울음을 안으로 곱게 삭이기를,
꿈꾸고 꿈꾸노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빠져나와
키 큰 미루나무 옆에 서 보고
혼자 고개 숙여 산길을 걷게 하소서.
산수유도 보고 매화도 보았는데 담아 오질 못했다.
어디서 보았을까 어떤 배경을 하고 있었던가
운전하면서 봤는지 보긴 보았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다 보여주고 내어 주어도 내가 담지오질 못했으니 소용없다.
내가 그리워하는 대상도 정작 그 대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그리워 하고 싶은 것만 그리워 하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장미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립다는 뜻 아닐까.
2017,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