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이성복 시인을 만나다

구름뜰 2021. 10. 16. 08:27

느낌/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서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강/이성복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서해 /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 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가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남해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그렇게 소중했던가/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 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 피가 출렁거려 불에 덴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 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뿐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 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노시인은 고조곤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노르딕 워킹으로 문고리를 잡는가 했는데 거기서 감각이나 사고방식을 회복하는 게 예술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부지최친절' 알지 못하는 것이 최고의 친절이라고
(여기서 친절은 무식한 것과 상통한다)

우리가 글을 쓰는 두 가지 이유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일이기 때문

"가가 가가"
"가가 가 가가"
"가가 가가 가가"
아!!
여기서 패턴을 알아채는 것이 문학이라고
아주 잠깐 밝혀지거나 보게 되거나 느끼는 것
새의 날개는 사람의 팔과 같다는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 문예가 아니고 문학이다.

예술이란
막다른 골목에 세워 놓고 작가는 빠지는 것
(빠지는 것 같지만 끝까지 작가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

선이란 끊임없이 선을 향해 나가 가는 것
미도 마찬가지
아름다워 지려 하는 과정이 아름다움이라는 것

A가 B의 짝지라는 걸 알았을 때
A가 중요해지듯
그 어떤 것도 씨앗이 될 수 있다

학문의 즐거움ㅡ특이점 연구.

억압된 것들은 언젠가 돌아온다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

쉽게 허락하지 마라

시와 각방 쓰고 있다

남해금산!
어떻게 쓰겠다고 생각 없이 쓰기를
머리 쓰지 않는 게 좋은 글이 된다
'오름오르다'는 사진을 보고 쓰게 된 글이라서 힘든 작업이었다고.

여력도 없는 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자리

선불교
마음도 내지 마라
모르는 자리가 다 드러난 자리다

"내면에 스승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말씀이자 당부 같았다

내면의 스승에 대해 젊을 때와 지금이 어떤지 궁금해서 물었다

카프카, 논어, 중용, 대학, 김소월, 한용운.
이상의 산문, 황지우, 최승자, 박남천, 등
구슬처럼 풀어놓으셨다
21. 10. 15. 가을비 오던 저녁.
구미 삼일문고.

어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분
편했다
오랫동안 알아온 인연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