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비 아니고 눈
구름뜰
2024. 12. 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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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틀에 쌓인 눈이 제법 두둑한 찻집
산은 다정했고 커피는 넉넉하였다
남쪽은 눈 온 흔적도 없는데
영등포행 ktx는 설국열차 같았다
어떤 일은
비라고 해놓고 눈이 오는 일처럼 반갑기도 하다
어릴 적 잠에서 깨 여닫이 문을 열었을 때
마당도 앞집 지붕도 하얗게 덮여있는 일이란 얼마나 눈부셨던가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눈 내리는 바깥풍경 속에서 자신에게로 오고 있을 나타샤를 기다리며 세상에 지는 건 아니고 더러워서 떠나는 것이라고 객기를 부렸다..
눈이 오는 건 자신이 나타샤를 사랑하여서라고
눈 쌓인 산을 곁에 둔 일도
명작 같은 커피도
잠깐 멈추다 가는 시간 같기도 하였다.
시간이 멈출리야 없지만
흐르지 않아도 되는 일같이
따뜻한 커피를 탐하는 시간
찻집에 유독 사람이 많은 건
어쩌면 서로를 흠향하는 일과 닮아있기 때문 아닐까
커피 한잔으로도 족한 일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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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ㅡ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