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수의 비밀

구름뜰 2011. 6. 18. 14:24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에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솜씨가 없는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랴면, 나의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짓지 않은 것입니다.

-한용운

 

자신의 재능을 자신만의 비밀로 즐길 줄 아는 마음,

다 지어 놓고도 짐짓 짓지 않은 줄로,

이런 여유가 가능한 심상은 어디서올까..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짖지 않은 마음으로,

 

짓지 못한 주머니는 미루는 현재일까.

기다림까지만, 님에대한 마음을 한정짓고 싶은, 

 

'미완으로 남겨두는 거기까지'가 아름답다.

주머니에 넣을 보물이 없는 현재,

두고 두고 완성을 미루는 심상,

아프고 쓰릴 때마다 한뜸 한뜸 만들어가는 마음만,

과정만 있는 화자의 삶의 양식.

 

수의 완성은 결말 즉 현실의 단절.

그것은 보물이 없는 결핍을 확인하는 순간이라서

짓지 않은 마음만 영원히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자신에게 엄중한 사람만이 아름다운 과정을 수놓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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