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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6 예인회

글쟁이들은 동인지를 내고그림쟁이들은 전시회를 가지는 12월이다열심히 쓰고 그린 이들은 이맘때 뿌듯하고설렁설렁 지내온 이들은 옹색해질 수도 있는 때다.그림도 글도 작가의 한 부분.작품을 통해 거듭나고 깊어지며 또 나아갈 것이다.그리고 또 그렸을 눈길 손길 마음길까지 결결한 색의 향연이다그녀의 수국을 처음 본 건 한 5년 전쯤 일게다수국과 잘 어울리는 그녀오늘도 수국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간 걸음이기도 했다.대작 '수국 2' 우측 화면의 명암은 경이로웠고 황홀경이었다. 여기(구미 새마을테마공원 1층전시실)에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작 태극기아래 그녀의 색들이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수국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왔다.방명록은 마지막 한 장이 남아있었다.생각나는 대로 순간의 감정을 몇 글자 적..

사람향기 2024.12.14

비 아니고 눈

창틀에 쌓인 눈이 제법 두둑한 찻집산은 다정했고 커피는 넉넉하였다남쪽은 눈 온 흔적도 없는데영등포행 ktx는 설국열차 같았다어떤 일은비라고 해놓고 눈이 오는 일처럼 반갑기도 하다어릴 적 잠에서 깨 여닫이 문을 열었을 때마당도 앞집 지붕도 하얗게 덮여있는 일이란 얼마나 눈부셨던가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눈 내리는 바깥풍경 속에서 자신에게로 오고 있을 나타샤를 기다리며 세상에 지는 건 아니고 더러워서 떠나는 것이라고 객기를 부렸다..눈이 오는 건 자신이 나타샤를 사랑하여서라고눈 쌓인 산을 곁에 둔 일도 명작 같은 커피도 잠깐 멈추다 가는 시간 같기도 하였다.시간이 멈출리야 없지만흐르지 않아도 되는 일같이따뜻한 커피를 탐하는 시간찻집에 유독 사람이 많은 건어쩌면 서로를 흠향하는 일과 닮아있기 ..

사람향기 2024.12.01

김장

겨울 길목 과제는 김장이다. 습관 덕분에 사 먹을 생각은 않고 해 오던 대로 하는 편이다11월 중순을 지나면 김장에 필요한 생강이나 마늘 젓갈들을 짬 날 때마다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는 배추를 눈여겨보게 된다. 맘에 드는 배추를 만나면 바로 김장 돌입이다.배추 때문에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그제 첫눈 오던 날, 올해 첫 농사일터인데 사돈네 텃밭 배추가 아파트까지 왔다.농사지은 걸 받아보는 일이란 그동안의 노고를 알기에 마음을 듬뿍 받는 일이다.이런 건 마음 아니면 흉내내기도 불가다.. 바리바리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게다.좋은 배추란 흰 줄기가 두껍지 않고 속이 노랗고 고신맛이 나면 굿이다. 흰 줄기가 두꺼우면 절이는 정도를 측정하기가 애매하다. 적당히 손맛까지 좋은 한마디로 최상급이다. 배추는 절..

사람향기 2024.11.29

그녀의 꽃다발

스포트라이트가 지고 나서도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눈부신 일이다너의 꽃에게"그것 좀 애매하지"라고말해버린 건 내 실수인데실수도 꽃으로 만드는 재주를그녀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안 한 건지 못한 건지 몰라도어떤 이야기는 오래 묵은 뒤에야꽃 같은 시간이 오기도 한다시간이 가치를 더할 때 침묵은향기로워진다죽이 잘 맞아서1년 전 꽃 한 송이가 부메랑처럼 다발이 되어 내게로 왔다그녀의 꽃이 내게로 왔다

사람향기 2024.11.13

손을 씻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의수를 외투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공범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ㅡ황지우

시와 수필 2024.11.03

겨울 ㅡ나무로부터 봄ㅡ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ㅡ황지우

시와 수필 2024.11.03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회

예전 시를 지도해 주시던 시인은 쓰기를 두고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고급독자로 남든지 작가로 남든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채식주의자로 토론수업을 했던 지인들과 오랫만에 한나절을 보냈다. 맨부커상 수상 소식과 함께 그녀의 문장은 내게로 왔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가 연작이고 세 곳의 계간지를 통해 발표된 것과 몽고반점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대충 보고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안 본 것보다는 안다고 할 수야 있겠지만 다시 보고 또 볼 일이다 실컷 얘기하고 헤어졌는데 전화가 왔다 서점에 한강 책이 동이 났다고 책 좀 빌려달라고... 이렇게 큰 일을 당하면 실감이 날까 반가운 소식이다

책향기 2024.10.12

그러므로 그래서

산책은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들어간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노을을 낭비하였는데 이어지는 저녁의 이야기는 흐린 은유는 아무 때나 친절하면 안 된다는 듯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ㅡ이규리 *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배려가 배려 아닌 곳으로 이렇게 순한 문장으로 순하지 만은 않은 어법의 대가 이규리 시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그래서 선생님 시는 한번 맛보고 나면 모를 수가 없다 살다가 문득 맘 가는 시 찾게 되는 시 한 줄도 못 외우고 있어도 인식으로 와닿는 추석명절을 앞두고 추석 아닌 것처럼 지낼 요량으로 들여다본다 그러므로 그래서.,...

시와 수필 2024.09.14

넘어져 본 사람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일어서게 한다고 ㅡ이준관

시와 수필 2024.08.10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파리 올림픽 성화는 실제 불꽃이 아니라 구름과 빛의 광선을 이용 만들어낸 불의 환상이라고 한다 성화가 점화되고 열기구가 서서히 하늘로 오르는가 하는데 음악이 은총처럼 온누리에 퍼졌다 사랑의 찬가였다. 만국 공통어 음악이 개막식 피날레를 장식했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에디트 피아프는 프로복서 애인이 자신을 만나러 오다 비행기 사고로 죽자 비통함을 담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대만 나를 사랑해 준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음을 에펠탑 오륜기 바로 아래가 무대였다. 에디트삐아프가 환생한 것 같이 샐린 디옹의 노래는 감동이었다 근육이 굳어가는 희귀병에 걸렸다는데 전 ..

사람향기 20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