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084

아무렇지도 않게

여명은 침묵을 닮았는데풀벌레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빈 공간을 채운다어쩌자고소리가 저리도기운을 더하는지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에도붉은 노을을 염려할 수 있다면아무렇지도 않은 건아무렇지 만은 않은 것들로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시간은 무수히 흘러왔고흘려보내기도 할 물길 같은데오늘도꿈꾸고 상상하는 일들에서자유롭기를사마귀 한마리 우리집 방충망에 앉았다녀석은 볼때마다 그 생김새 때문에'달랑거쳘'이라는 고사성어가 먼저 생각난다제법 힘차고 당당하여 한참을 지켜보았다보다보니 배경이 든다하늘이 구름이 먼데 금오산이 한눈에 든다하루하루가 같은 날 같지만 소소하게 밀고 나가는 것들은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새벽 기운을 전해준 이가 있어 주저리 주저리 오랫만에 시도 써보고 어제 다녀간 사마귀도 풀어내 본다날이 좋아서 좋은게 아니라..

사람향기 11:53:00

오디세이

영웅의 대 서사시를영화로 만들어진 걸 보는 일이란 고마운 일이다정성을 다해 손맛 입맛 플레이팅까지완벽한 요리로 허기를 채우듯대형 스크린이 왜 있어야 하는지도 정신이 뜻을 빛내고그 뜻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걸 보는 일이란결국 영웅을 만나는 일이다더디고 잘 일어나지도 않는 일이긴하지만신화라는 전제가 오히려 전달력 이입력도 좋다규정해버리고 나면 편하지만불편한 쪽에 서는 일때를 기다리는 모습도 좋았다기다리는 일은견디고 또 견디는 일이 된다주인의 귀환을 아는 죽기직전의 개와개의 꼬리를 통해 아버지를 확신하는 아들 매우 인상적인 걸 영화는 스르르 비추고 만다비중이 클수록 흘러버리는 느낌시크하다 ㅎ 그러니어제 만난 지인들에게 꼭 보라고 권할 수 밖에 보시니좋았다

사람향기 2026.08.18

자두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대학 보내 달라고 데모했다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아무도 알은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방문을 걸어 잠그고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형들도 모르는 척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몰래 울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 먹었다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어느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빈속에 그렇게 날 것만 먹으면 탈난다고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나는 스스로 투쟁..

시와 수필 202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