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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ㅡ나무로부터 봄ㅡ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ㅡ황지우

시와 수필 2024.11.03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회

예전 시를 지도해 주시던 시인은 쓰기를 두고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고급독자로 남든지 작가로 남든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채식주의자로 토론수업을 했던 지인들과 오랫만에 한나절을 보냈다. 맨부커상 수상 소식과 함께 그녀의 문장은 내게로 왔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가 연작이고 세 곳의 계간지를 통해 발표된 것과 몽고반점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대충 보고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안 본 것보다는 안다고 할 수야 있겠지만 다시 보고 또 볼 일이다 실컷 얘기하고 헤어졌는데 전화가 왔다 서점에 한강 책이 동이 났다고 책 좀 빌려달라고... 이렇게 큰 일을 당하면 실감이 날까 반가운 소식이다

책향기 2024.10.12

그러므로 그래서

산책은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들어간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노을을 낭비하였는데 이어지는 저녁의 이야기는 흐린 은유는 아무 때나 친절하면 안 된다는 듯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ㅡ이규리 *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배려가 배려 아닌 곳으로 이렇게 순한 문장으로 순하지 만은 않은 어법의 대가 이규리 시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그래서 선생님 시는 한번 맛보고 나면 모를 수가 없다 살다가 문득 맘 가는 시 찾게 되는 시 한 줄도 못 외우고 있어도 인식으로 와닿는 추석명절을 앞두고 추석 아닌 것처럼 지낼 요량으로 들여다본다 그러므로 그래서.,...

시와 수필 202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