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사

저만치 있는 속깊은 이성친구가 다가온다면

구름뜰 2012. 1. 6. 09:53

 

누가 어느 연말 모임에서 “귀여운 남자 있으면 바람 피울 용기 있음?”이라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다들 자식 있어 못한다, 상상만 해보겠다, 용기가 없다, 원해도 그런 일 안 생긴다, 하며

신중한 너스레를 떨었다. 상상만으로도 일탈로 여기니 어째 이 영역도 양극화가 심하다.


왜 여자들은 그'중간자'를 쉽게 포기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 후 감정 소통 상대가 오로지 남편, 말 섞는 상대가 오로지 택배 아저씨면

서운할 것 같다. 그렇다고 바람? 그거 아무나 피우는 거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괜찮은 어른 여자,

어른 남자로 나이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속 깊은 이성 친구’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남자친구나 남편을 물론 사랑하지만 그와는 다른 친밀감을 나누는 이성 친구는

기나긴 남은 인생을 따뜻하게 보살펴줄 것 같다.

'친구’라 해서 털털하고 중성적인 느낌으로 타협하자는 게 아니다.

 

남자 농도나 여자 농도가 짙어도 거리감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진짜 어른들의 만남.

왜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워하고 다른 형식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지만

 그래도 지금을 충분히 향유하고 보존할 줄 아는 사이. 감정의 저울질도 타산도 필요 없는 관계를 말한다.

 

그러니 속 깊은 이성 친구는 어떤 의미에선 나를 가장 나다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게다가 ‘내 남자’라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쾌적하게 저만치 있는 그 남자에겐 감정노동이 필요 없다.

 

한데 여기서 함정. 쾌적한 만큼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지옥을 끌어안고 살아갈까 문득 궁금해지는 것!

대개 그들은 평소 내색을 전혀 안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런 ‘독’을 풍기고,

무방비 상태에서 그 냄새에 이끌려 들어가다 보면… 그땐 나도 모른다. 

-중앙일보12.29 여자는 왜 ... 임경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