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라는
학원 광고를 붙이고 달려가는 시내버스
죽도록 굶으면 죽고 죽도록 사랑해도 죽는데.
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지 않을까.
죽도록 공부해본 인간이나
죽도록 해야 할 공부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저 광고는 결국
죽음만을 광고하고 있는 거다
죽도록 공부하라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
죽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옥상과 욕조나 지하철이 큰 입을 벌리고 있질 않나
공부란 활활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도
자정이 훤씬 넘도록
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들이
어둠속을 질주한다. 죽기 살기로
-이영광
학생을 모르는 학원, 어린이를 모르는 어린이집,,학생이 선생의 수준을 능가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람을 키우는!! 일에서 직업의 사명감은 다른 직업과는 달라야 하고 다르다.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는 이 문구를 설사 그 학원장이 고유권한으로 결정된 문안이라 하더라도, 그 학원 선생중에 아니 그 학원과 관련한 어느 분이라도 학생입장에서 그 문장을 읽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내가 그 학원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이 문장을 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래 죽도록 공부하자 그런 생각이 들까. 아니면 아 짜증나 그래 차라리 죽어라는 말이지 공부하기 싫으면,,' 시인의 말마따나 공부가 목적이 아닌 문장이다. 죽음이 목적인데 공부로는 죽을 수 없으니 다른 걸 찾아보라는 얘기같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옥상이나 욕조나 지하철을 얘기한 것 같다. 비약이라고 치부하기엔 이 시가 너무 와 닿는다.
플렌카드에서 자주 접하는 문장중 단골 메뉴가 '결사반대'다. 이것 역시 묵숨걸기다. 대체로 여럿이 함께하는 일인 경우에 이런 문장을 보게된다. 어떤것은 빨간글씨로 피가 흐르는 느낌까지 나타낸 글씨도 있다. 관철되지 않으면 죽겠다는 뜻, 즉 떼죽음을 의미하는 문장이다.
어린이집에서 아동을 학대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접하게 된다. 음성은 들을 수 없고 그림만인데도 보는 순간 어른인나도 섬찟해진다. 한데 그 현장에서 당한 아이와 그 주변에서 그것을 보았거나 들은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아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느낄까' 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한다면..아이들은 말하지 못할 뿐 어른과 느끼는 것은 하나도 다르지 않을 뿐아니라 감각은 더 섬세한데. 강아지만 봐도 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안다. 눈빛이나 몸짓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