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상하다. 최고의 TV 수상기와 통신 단말기를 만드는 회사는 있어도 최고의 언론사나 제작사가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TV 채널이 수백 개에 달해도 정작 볼 만한 프로그램은 없다고 불평하는 이가 많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파일들은 출처도 모호하고 제목도 묘한데, 그걸 빠르게 받아 볼 수 있다고 자랑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가 세 개나 된다는 사실도 빠뜨리면 안 되겠다. 서로 손발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열심히 미디어를 ‘진흥’한단다. 나는 다만 진흥된 미디어를 대표하는 사업이 무엇이며 그래서 흥한 인물이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다. 한국의 잡스와 저커버그가 있다면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시는지.
생각해 보면 나라를 대표하는 미디어 인물이 통신사 회장과 장치제조업 사장이라는 점이 우습다. 시장에 갔더니 점포와 물건은 볼 것이 없고 시장 주인과 매대를 설치하는 사업자가 최고라고 자랑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한국의 미디어 인물이 이런 식이라는 데 무심한 세태가 부끄럽다. 칼도 그렇지만 미디어는 애초에 도구다. 무엇을 위한 것이지 위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도구의 크고 아름다움에 홀려 애초에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헷갈린다면 이게 일단 불길한 전조다. 도구가 목적이 되면 위험하다. 도구가 원래 목적을 훼손하기 시작하면 실로 위험한 길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정색하고 물어보자. 미디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소통을 위한 것이다. 더 많은 내용과 사람을 접하고, 배우고, 깨닫게 돕는 것이다. 미디어가 좋으면 뭐하나, 내용이 고만고만한데. 인터넷이 빠르면 뭐하나, 서로 통하지 않는데. 그래서 그런가. 미디어로 흥한다는 이 나라에서 소통이 잘 된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예컨대 미디어 때문에 정파 간,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이 준다는 증거가 없다. 오히려 갈등을 강화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해방 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형국이다. 이념 갈등이 심화하는 데 정파적 신문과 부실한 공영방송이 기여한 바 없다고 말하지 마시라. 언론이 대립을 선도한 혐의가 있다. ‘망국적’ 지역감정이라더니, 나는 인터넷에서 끼리끼리 모여 떠드는 사람들을 보고 그 참뜻을 알게 되었다. 세대 간 갈등은 취향과 생활양식의 차이를 넘어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대립과 갈등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로 빠르고 편리하게 소통한 결과가 이렇다면 진정 미디어로 망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해 출판한 나라다미디어 기술로 보면 당시 세계적 수준에 오른 나라였다. 그러나 출판이 활성화돼 소통이 융성했다는 증거가 없다. 즉 미디어로 흥한 증거가 없다. 혹 이것이 도구를 가졌을 뿐 목적에 충실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는 아니었는지, 후손인 우리가 되새길 일이다.
- 이준웅<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준웅<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