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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커버스토리 12월 26일자

구름뜰 2014. 12. 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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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지리산 자락 박남준 시인의 집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따뜻하다.

     

    2014년이 저문다. 여전히 춥고 멀다.

    그들이 끼리끼리 고액연봉을 자축해도 고만고만한 우리네 일상은 여전히 온기 사라진 외딴 방바닥 같지.

    젊은 한 시절엔 모두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 믿는다. 하지만 든든한 밥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면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치사하고도 숭고하다는 걸 절감할 거야.

    그렇게 다들 먹고살기 위해 늙어가지. ‘어떻게 먹고 살지’, 아니 ‘뭘 먹고 살지’에 목을 매다가 나중엔 ‘그냥 산다’는 숭고한 진리 앞에 모두 숙연히 고개를 숙일 거야.

     

    생계(生計)란 백척간두에 선 우리.

    밥줄 너머 ‘시(詩)’의 안부를 궁금해해야 할 여유도 없을 뿐더러 궁금해해야 할 이유도 없겠지. 퇴근 직후 걸쭉한 술 한 잔 하고 노래방 애창곡 몇 곡이면 일상은 금세 ‘봄날’.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들 그렇게 살아왔어. 가장(家長)이란 곧 ‘견딤’이지.

    언젠가 저승행 기차를 타야 하는 우리.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삶에선 도리 없이 ‘패잔병’.

    늘그막의 어느 하루. 밥벌이도 시들해진다. 있는 자랑도 조금씩 구차해질 때, 사람들은 시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조금씩 ‘자연’으로 되돌리지. 삶이 결코 자랑도 주장도 의지도 아님을 그들은 알까?

    시장과 자연의 경계.

    거기에 꽃처럼 서있는 한 사람이 있어. 바로 ‘시인(詩人)’이야. 그는 하나의 ‘퓨즈’. 우리는 그를 딛고 잠시 자연의 심장 속으로 잠행할 수 있어. 그를 딛고 반자유·반정의·반평등을 질타하는 ‘촛불’도 될 수 있어.

    모든 사람이 다 시인이 될 수는 없어. 될 필요도 없어. 시인은 하늘이 주는 ‘천형(天刑)’을 기꺼이 받는 자. 그래서 외로움의 바닥을 칠 줄 알지. 우리같이 덜 외로운 자는 우리보다 더 외로운 그의 시에서 위로를 받지. 지상에서 공기가 사라지는 날 시는 우리의 마지막 ‘산소호흡기’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시인은 가기만 하고 우리는 무엇을 하기만 한다. 

     

    ~ 중략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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