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캠페인 ‘책읽는 도시 행복한 시민’ 책 읽어주는 남자] 사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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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100년 전에 완성됐다. 요 임금부터 한 무제까지의 역사를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으로 구성했다. 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제외한 다채로운 인물들의 전기를 다루고 있다.
‘사기열전 1·2’(2007 민음사)는 1천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사마천은 적절한 에피소드를 부각해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다음, 그 인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사기열전’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에는 당대의 사상과 현실이 반영돼 있다. 그 점을 감안하고 보면, 책 속의 인간군상은 21세기 인간형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어떤 구절은 오늘날의 현실을 서술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노자·한비열전’에서 사마천은 한비가 지은 ‘세난’편을 길게 인용하고 있다. 세난이란 유세 즉, 제후를 설득하는 일의 어려움이란 뜻이다. 한비는 유세객의 말이 어떻게 잘못 받아들여지는지를 여러 가지 상황을 들어 설명한 뒤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우선인 것은 현대의 선거와 다르지 않다. 한비는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는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을의 처세술’ 제1조라 할 만하다.
‘자객열전’에서는 자신을 알아준 엄중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 원수를 대신 갚는 섭정, 연나라 태자 단의 부탁으로 진나라 왕을 죽이러 간 형가 등 5명의 자객을 소개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에게 ‘인정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 동기가 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 지배자는 인정욕망에 목마른 사람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마음을 얻은 뒤에는 그를 이용해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한다. ‘갑의 처세술’이다.
사기 전체의 서문 성격을 갖는 ‘태사공자서’를 제외하면 열전의 마지막 편은 ‘화식열전’이다. ‘화식(貨殖)’이란 재산증식이란 뜻으로, 이 편에서는 상공업으로 큰 재산을 이룬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주나라 사람 백규는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는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들일 때는 팔아넘겼다” “시기를 보아 나아가는 데는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재빨랐다”고 했다. 이 구절은 마치 증권시장의 금언처럼 들린다.
사마천은 “부(富)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얻고 싶어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선비가 절개에 죽는 것도, 병사가 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살인 폭행 강도 절도 등 범법행위도, 미녀들이 아름답게 꾸미고 눈짓으로 유혹하는 것도 모두 재물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고조선 사람들도 ‘엄지 척!’ 하면서 ‘돈이 제일이야’ 했단 말인가.
기원전에 쓰인 역사책을 읽는데 자꾸 오늘날의 모습이 겹쳐진다. 생각해보면, 고작 2천~3천년의 시간 동안 인간 본성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기’뿐 아니라 사서삼경이나 그리스의 서사시, 비극 같은 옛날 책을 지금도 읽고 있다.
김광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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