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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단(速斷)의 폭력에 맞서서

구름뜰 2016. 6. 28. 12:14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 문단의 ‘젊은 피’로목받는 김금희.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남긴 파장을 낚아챈다. [사진 문학동네]


포털 사이트 국어사전에 ‘이상하다’라는 말은 ‘정상적인 상태와는 다르다’라는, 얼마간 폭력적인 문장으로 정의돼 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이상’인가. 그것을 분별하는 기준이 그저 다수결의 횡포일 뿐인 때도 많지 않은가. 사전을 좀 더 읽어보면 뒤이어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라는 설명도 나온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문장들에는 제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판단 유보의 태도가 한 줌이나마 담겨 있으니.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해지려면 소설가들 정도는 돼야 한다. 그들은 남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여 결국 그를 집단적 통념의 폭력으로부터 구출해내는 일을 한다. 세계 소설사는 이상한 인간들의 편에 선 소설가들의 투쟁의 역사이고, 훌륭한 소설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변호하는 데 성공한 피고인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 최근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출간한 김금희가 특유의 경쾌한 진실함으로 작성해 나가는 중인 명단에는 벌써 우리가 오래 잊을 수 없을 이름이 여럿이다.


‘조중균의 세계’의 주인공 조중균은 고참 편집자인데 직장 내 사교에 무심하고 업무에만 충실해 ‘유령 같다’는 평가를 받을 뿐 아니라 저자의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치밀한 교정작업으로 출간을 지연시킨 탓에 오히려 해고를 당하기에 이르는 그야말로 ‘이상한’ 사람이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는 그저 대학을 다닐 때 어떤 일로 경험한 모욕과 수치에 깊은 충격을 받은 이후 자신의 내적 진실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사람일 뿐임을 알게 되고 이런 사람을 견뎌내지 못하는 이 세계야말로 이상한 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 소설 ‘세실리아’에서 지금 송년회를 하고 있는 이들은 요트부 동아리 동기들로 그들은 20년 전 그들이 따돌려 내쫓다시피 한 친구 오세실리아를 화제에 올리는데 그의 별명이 ‘엉겅퀸’인 것이 ‘잘 엉겨서’인지 ‘엉덩이가 풍만해서’인지 따위가 그들 대화의 수준이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지금은 설치미술가가 된 세실리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녀가 당시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동아리를 떠나야 했는지, 왜 지금은 버려진 기기들을 모으고 구덩이를 파는 일종의 자기 치유적 설치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소설들의 화자가 조중균과 오세실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독특한 이름만큼의 고유한 진실을 이해받지 못한 채 끝내 ‘유령’과 ‘엉겅퀸’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요즘 나는 속단(速斷)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한다. 이것밖에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의 저 수많은 판관들의 언어 폭력에 절망할 때마다 나는 이런 소설 속에서 겨우 일용할 희망을 찾아 문장에 의지하는 내 삶을 연명해 나간다.

신 형 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이달의 예술-문학 중앙일보

* 속단의 폭력! 제목이 맘에 드는 글이다.
요즘 속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토론을 하거나 어떤 상황을 두고 얘기 나눌때 늘 경계해야할 것이 속단이다. 속단은 더 이상 이야기를 끌어가기가 어렵다. 벽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좀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고민이나 생각같은 것 없이 늘 반응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심한 경우가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 형이다. 
 
사람은 특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어떤 상황에서도 늘 같이 반응한다는 얘기도 되겠다. 틀이 강해서 자신의 변하시킬 유연성이 없어 머물러 있기도 한 거이다. 이런 경우는 보나 안보나 뻔하니 궁금하지도 않고, 재미 있을 리 만무다. 

만나는 횟수가 늘면서 질리는 이도 있고 끌리는 이도 있다. 끌림은 외부로 드러나고 느끼는 것외에 다 가늠하진 못하지만 느낌으로 오는 그 어떤 것까지 무수한 것들에 의한 인식이고 반응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번 읽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는 (올리버 색스라) 정신과 의사이면서 소설가인데  이책은 임상에서 경험한 사례들을 옮겨 놓은 글이다. 같은 환자를 18년 동안이나 지켜 봐 왔음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겠다고 .....

우리는 조금만 알면 함부로 속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400페이지가 넘은 그  두꺼운 책을 읽고나서 계속 여운이 남는것은 그 의사의 겸손이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 자녀들, 부부간, 친척, 친구, 조금 아는 친구 조금 친한 친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한게 얼마나 많을까. 세월이 지났는데도 지난 기억속에 머물러 있는 그 사람에 대한 내 인식이 전부인줄 모르고 함부로 말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나이들어 갈수록 이 세상에 입뗄 것은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유가 없는 것들이 없으니,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우리 삶 같기도 하다.  이것도 속단일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