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그렇게 잘 부른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명치끝을 미어지게 만드는 가수가 있었다. 그의 가사는 노래하는 산문 같았고, 그의 목소리는 영원한 떨림을 간직한 생생한 순진함이 있었다. 간직하려 해도 멀리 있는 듯한 창법이었다. 그는 예수보다 며칠 덜 살고선 죽어버렸다.
않아는 그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듣고 또 들어서 이제는 그의 노래만 들어도 입에 짠물이 돌았다. 왜 그렇게 자주 들었는가 생각해 봤더니, 그가 남이 만든 노래를 부르든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든 그의 노래 속에 든 떨림에 '첫' 떨림처럼 늘 감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보다 오래 살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장막을 치고 남의 노래 목소리 흉내를 기막히게 내는 사람들을 숨겨놓고, 그와 대결을 벌이게 했다. 그러면 관객은 그의 목소리가 아닌 사람을 골라낸 다음, 그의 목소리를 골라내면 되었다. 노래를 한두 소절 부르고 나면 그의 노래를 흉내내는 사람들이 들어 있던 조그만 방이 열리고 그 사람들이 하나씩 나왔다. 그의 자리는 정말 깨끗한 흙처럼 깨끗했다.
빈방은 무구했다. 무한했다. 무안을 주었다. 무명이었다. 무결했다.
않아는 다 파먹은 호두 껍질처럼 텅 빈 방이 부러웠다. 목소리만 남은 사람에게 샘이 났다. 않아는 몸 없이 목소리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노래하는 투명한 자리. 장소가 없는 장소. 부재의 틀에 딱 부합하는 그의 노래.
-김혜순 -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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