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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구름뜰 2017. 2. 2. 08:33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혀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마음 어딘가에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좀 더 부드럽고 순해지는 느낌입니다. ‘도른도른’이란 말의 호의에 찬 따스함은 또 어떤가요. 가슴엔지 눈엔지 도른도른 마음은 숨어 있고, 그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하나 서늘하게 흐르는 사람. 나날의 삶도 세상사도 가파른 소식들뿐이지만, 그 강물 마음속 깊이 잘 지켜 지니시는 사람.

김영랑은 일제 말의 암흑기를 창씨개명도 삭발도 하지 않고 고향 강진에서 견뎌냅니다. 동경유학생이면서도 일본식 한자 관념어를 한사코 사절한 채, 토착의 모어(母語)로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려 한 그의 고투는 필사적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남도는 동백이 피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