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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구름뜰 2017. 4. 16. 07:26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도종환



* 맘에 드는 풍경을 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 시인은 지금 국회로 갔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시인으로 살 때의 작품들은 오롯이 정서가반영되어 있으니 좋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 발표한 시가 있는지. 시가 잘 써지는 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인다.



 


* 비익조나 연리지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암컷과 수컷이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전설의 새이고,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통하는 것을 이르니. 부부간이나 남녀의 친애함을 일컫는 말이다.


위 사진은 속리산 어느 식당 정원 풍경이다. 호델 뒤쪽 인적은 많지 않은 등산로 초입, 마을 후미에 있는 집으로 어제 큰애가 이집에 들어서면서 ' 1억을 준대도 안 판 소나무'라고 소개해 주었다.


가격에 놀라고 생김새에 놀라 가 보았다. 네 갈래로 가지를 뻗어 굵기가 고르게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언뜻  보면 연리지다 싶게 위 아래로 나뉘어 있다. 잎은 구름이나 물이 굽이치며 흘러가는 형상이라 역동적이다. 배경이 거북이가 목을 쭈욱 뺀것 같기도 한, 형상이라 멋스럽다. 저 뒤에 초록만 있었다면 눈에 덜 띌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소나무 좌측 모든 가지를 좌측으로만 뻗은 나목도 눈에 띄었다. 이 생경한 모습은 뒷 배경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봄이라고 아우성인데 나는 아직 겨울이야 라고 우기고 있는 것 같은(그럴리야 있을까만 오죽하면 이러고 있을까만,,, ) 우듬지에도 새순이 없는 걸 보면.. 고사 직전인지. 


본질적으로 나무가 저리 자랄리는 만무일 터인데. 주인이 저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환경에서 자란걸 여기다 옮겨 심었는지. 저 나무도 한그루가 가지를 나누어 뻗은것 같았다. 중심이라고 잡은 것이 저 모양이라면 저 나무의 뿌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배경이 사는 건,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전에 이미 주체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떤 고사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무 쓰는 친구를 따라 산에 가니 친구가 이나무 저나무를 고르다 못생긴 나무는 두고 잘 생긴 나무를 캐는 걸 보고 '아 못생겨서 살아 남았구나' 했는데,  그가 집으로 돌아와 머슴에게 닭을 잡으라 할적에 머슴이 '잘 우는 닭과 울지 못하는 닭'이 있으매 어떤 닭을 잡을까 물으니 울지 못하는 닭을 잡으라 한 것처럼, 쓰임새도 잘나서이기도 하고 못나서 이기도 하니 환경에 따라 작용한다.


여백을 든든한 배경처럼 가질 줄 알고, 비어있을 줄 아는 사람이 부러운건 그가 대체로 배경보다 먼저 아름답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