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시중의 미소
필시 우리 반 아이가 분명할진대
누군가 석류 한 송이를
내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교실에 가서 다만 석류를 들어보이며
누가 이 이쁜 일을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부처의 연꽃에 가섭이 미소지었다지만
다행히 아무도 웃지 않았다
가슴 가득 반짝이며 물밀어오는
삶의 이 최대의 한 순간
낮달이 하나 서으로 가고 있었을 뿐
-복효근
* '염화시중'의 미소! 제목을 기막히게 붙인 시다.
2500년 전 싣다르타가 영취산에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제자들에게 말씀은 않고 연꽃 한송이를 들어 올려 보였다. 그 뜻을 몰랐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자 중 가섭만이 부처의 뜻을 알고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것을 '염화시중'이라고 한다.
존재론적 외로움은 제쳐두고 스스로 말문을 닫는 외로움도 있어서 우리는 소통에 목마른지 모른다. 꽃을 보고 그것을 담고 그것을 나누는 이런 일련의 마음, 한 편의 시와 무애 다를까.
주섬 주섬 며칠째 머뭇거리기만 했는데, 어느 결에 활짝 핀 걸 보는 기분이란.
염화시중의 미소는 알아주는 것이겠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만의 세계가 있고, 깨달은 사람에게도 그만의 세계가 있는 법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세계를 부정하고 다른 진짜 세계. 혹은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중략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세계를 긍정하며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싣다르타의 꽃과 가섭의 미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가 아름다운 꽃을 보여준다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떠오를 겁니다. 반면 자기보다 우월한 어떤 사람이 꽃을 보여 준다면, 우리는 왜 그분이 꽃을 들었는지 고민하게 될 겁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가섭의 환한 미소는 그만이 스승 싣다르타와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스승이 안중에도 없어야 꽃을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수 있는가' 중에서.. P137
* 염화시중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찾아본 문장이다.
어떤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맨토라고 일컫고 존경하는 롤모델이 곁에 있는건 좋은 일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스승을 자양분 삼아 자신만의 자기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와 통하는 얘기다. 언제까지 스승을 따라다닐 것인가. 그런 면에서 싣다르타는 자신을 마음을 안 염화시중의 가섭이 얼마나 반가웠을지. 저 하나라도 있으니 하는 마음....
마음에서 마음으로,
알아주는 대상이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외롭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