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이제는 독해져야겠다
나뭇잎이 시퍼런 입술로 말했다
이제는 독해져야겠다
나뭇잎이 시퍼런 입술로 말했다
내 친구들이 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내 친구들이 독해지고
성공하려는 내 친구들도 독해지고
실패한 친구들도 독해지기 때문이다
달라진다는 것은 외로워진다는 것
독해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도 달라질 수 없을까
달팽이가 갑옷을 입고 풀잎에 앉을 때
민달팽이가 맨몸으로 맨땅을 기어가듯이
이제는 독해져야겠다
달라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독해져야겠다 이제는 독해져야겠다
나뭇잎이 또 시퍼런 입술로 말했다
-차창룡
고시원은 괜찮아요
이 선원은 선승들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혼자이지요
홀로 존귀한 최고의 선승들입니다
108개의 선방에는 선승이 꼭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어요
여느 선방과 달리 방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잠을 자든 공부를 하든 밥을 먹든 자위행위를 하든
혼자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가끔 심한 소음이 있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가급적
상관하지 않습니다 정 참지 못하면
총무스님에게 호소하면 됩니다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한국
식탁에는 온통 외국인뿐입니다
이곳은 외국인을 위한 선원인 것이지요
금지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양간에 함께 모인 선승들은 말이 없습니다
말은 커녕 입도 벌리지 않고
그들은 밥을 몸속으로 밀어넣습니다
다년간 수행한 덕분이지요
오래 수행한 선승일수록 공양할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뱃속으로 고요의 강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면
가끔 화장실에 갑니다 화장실은 늘 만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입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불이 나도 괜찮아요
13호실에 비상용 사다리가 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미덕이 습관이 되어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차창룡
이별 장면
우리는 남자와 여자여서 함께 잠을 잤다
방은 하나
침대는 둘
양말은 셋
(여자는 손수건 대신 양말 한 짝으로 코를 물었다지 아마)
잠은 홀수여서 한갓졌다
발이 시리니 잠이 안 왔다
깨어 있으려니 더 추웠다
호텔 체크아웃을 누가 할 것인가
숙박 요금이 3일 치나 쌓였으니
이쯤 되면 폭발적인 곁눈질이다
-김민정
램프와 빵-겨울 판화 6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기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