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에 고마움 담아'
"구름은 모든 인간 욕망의 아름다운 표상으로서 신의 하늘과 가련한 땅 사이, 그 양편 모두에 속하면서 떠돌아 다닌다. " -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中 -
영국에는 구름감상협회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무용한 구름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 어쩌면 그런 일들이 인간에게 인간다움을 약속하는 행위가 아닐까. 출근하는 토요일 오후,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헤르만 헤세의 저 문장을 음미합니다.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은 어느새 발목을 휘감고 여름의 맨발을 어색하게 내려다 보게 합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양말 생각이 나는군요. 수고한 여름에게 양말 한 켤레 선물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덤으로 우리도 한 켤레씩 나누어 신을까요? ^^
다음 주부터 아이가 새로 출근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고맙습니다.
멀리 돌아온 듯 하지만 그 과정 중에 아이도 느끼는 바가 더 있지 않았을까 내심 생각하지요.
2014년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암은 막바지로 치닫고
애쓴 보람도 없이 세 번째 암에 이르러 이제 그만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게 되었어요.
아내 없이 보낸 11년.
긴 독거를 스스로 책임지고 잘 보내셨는데
육체도 정신도 힘에 겨워 이제 더는 독거가 어려워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거를 이루기 위해 안간힘 쓰고 계시지만....
멀지 않은 듯 합니다.
멀리 나가있는 자식들은 발만 동동구르고
병원으로 가는 일을 하루라도 미루고 싶어하시는 아버지...,
가장 가까이 사는 제가 매일 새벽 아버지 집으로 출근했다가 점심에 돌아오는 무용한 일을 반복하고 있어요.
그런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와중에
아주 큰 짐을 덜어주셨습니다.
잊을 수 없을거예요.
부모도 자식도 내 인생의 한 고리라 안팎으로 힘겨웠는데... 무엇보다 큰 짐을 덜어주셨어요.
빨리 뵙고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하는데....제가 좀 예의가 좀 없습니다.
부군께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데.... 무엇보다 이 모든 일들이 아내가 어여쁜 덕분이니....
굼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곧 연락드릴께요.
월요일 출근 앞두고 있는 아이의 환한 얼굴을 보는데
인사도 못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하지 않아도 좋을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 습니다.
그 이유를 찾는데 장석주 시인의 이 문장이 문득 떠올랐어요.
"구월로 들어서면 연일 하늘이 파랗고 바람은 쾌청하다. 이 쾌청의 정도는
이 세상의 포악한 짐승들조차 개과천선하기에 충분할 정도다."
구월의 날씨, 쾌청에게 수고를 돌리며......^^
최선생
내가 내색하는 걸 극도로 자제하게 하는 사람!
이 세상에 무용한 일은 없을거요.
그게 부모님과 관련한 일이면 더욱 그럴 것이요
나도 그 시간속에서 지냈던 시절 그런 생각을 했었다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만큼 큰 힘이 되어주는 것도 없더이다
그 무용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를
그 시간속에 있을때는 몰랐을 뿐이더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요.
아드님 간 발령받은 그곳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으니
보람있을 거라고 하더이다.
어쨌거나 결론이 좋아서 좋구려
그대 짐을 덜어준 일이라 생각한다니 무엇보다 내가 기분이 좋소
나는 요즘 마음수련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습관을 바꾸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하루 두시간의 명상시간!
시간도 어찌 보면 매우 무용한 시간 같지만
몸이 마음을 도우고 마음이 몸을 도우는 묘한 경험을 합니다.
할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하고있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건강도 챙기세요
제가 어머니 간병하느라 46킬로까지 내려간 적이 있어요
중환자실에만 있을 때였는데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며칠 끼니에 게을렀더니
한 십년은 늙어버린 몸이 되더이다.
그래서 그때 든 생각이 내가 건강해야
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였소.
잘 지내시고..
다른건 신경쓰지 마시고
덜었다니 내겐 더 큰 기쁨입니다.
그리 알고 하루하루 잘 추스러시길...
2017,9,4
* 위 서한은 지인의 아들이 출퇴근에 네시간이나 걸리는 공익근무지 변경을 위해서 병무청에 공문서를 제출하고 이러 저러한 절차를 거쳤고, 어제부터 집에서 가까운 근무지로 출근하는 걸 보면서 지인이 보내온 편지다.
말보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만나면 그냥 웃거나 매우 일상적인 몇마디나 나누다가
맛있는 걸 함께 먹거나
입다물고 걷거나 하는 게 다인 지인이다.
내가 무얼하고 싶다면 기꺼이 들어줄것 같고
그녀도 무얼하고 싶다면 기꺼이 들어줄 거지만
그녀도 나도 서로에겐 그냥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는 사이다.
어젯밤 메일을 받고 바로 답장을 보냈는데,
지나고 보니 주고 받은 마음이 따뜻하게 번져왔다.
여기다 저장해두고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귀히 여길줄 아는 일상에 감사드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