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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치유 20년의 깨달음…예수도 뛰어난 명상가다

구름뜰 2019. 3. 5. 21:02

  

성공회 윤종모 주교가 본 종교
기독교 묵상·기도와 명상은 통해
화·분노·욕심 너머 세상 바라봐야
‘오직 예수’는 껍데기만 잡는 꼴
배타적 종교성 대신 영성 좇아야


“기가 지니, 명상시를 읽어줘!”

탁자 위에 놓인 AI(인공지능) 스피커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연결된 TV화면에는 푸른 색조의 그림이 펼쳐졌다. 그걸 배경 삼아 명상시가 낭송됐다. ‘타고난 한량기로 삶을 탕진하던 아버지의 무책임으로/어머니는 자식들을 기르시느라 무진 애를 쓰셨지… 이제 다시 가 본 그 숲속에는/어머니의 미소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한성공회 윤종모(70) 주교의 자작시다.
 
그는 대학에서 집단 명상을 지도한 적이 있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지금 느껴지는 가장 강렬한 감정을 그림이나 시, 혹은 춤으로 표현해보라고 했다.” 윤 주교 자신도 눈을 감았다. 풍경이 나타났다.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해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내게 숲이 나타났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거닐던 곳이었다. 진한 슬픔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그 숲에 가더라도 자태 곱던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존재론적인 슬픔이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동시에 치유의 물결도 함께 밀려왔다.
 
지난달 27일 서울 율곡로 주원빌딩 2층에 차려진 명상실에서 윤종모 주교를 만났다. 그는 꼬박 20년째 사람들에게 치유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 14일부터는 6주간 일반인을 대상으로 ‘창조, 성장, 치유를 위한 치유명상 5단계’란 주제로 명상을 가르칠 참이다. 그에게 ‘명상과 종교’를 물었다.
 
윤종모 주교는 디지털에도 익숙하다. 지난달 27일 명상시를 낭송 중인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여주고 있다.

윤종모 주교는 디지털에도 익숙하다. 지난달 27일 명상시를 낭송 중인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여주고 있다.

 
질의 :서양에서도 명상 열풍이 분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응답 :“한 마디로 ‘삶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살기 위한 기술’이다. 다들 경쟁에 쫓겨서 살지 않나. 그러다 보면 분노도 생기고, 두려움도 생기고, 조급한 마음도 생긴다. 그런 상태로 앞만 보고 달려가면 어떻겠나. 결국 사람들은 탈진하고 만다. 명상은 그런 삶에다 ‘고요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질의 :‘고요의 공간’을 만들어서 무얼 하나.
 
응답 :“내가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쉬게 된다. 명상은 쉼이다. 쉼을 통해 내가 눈을 하나 더 갖는 일이다.”
 
질의 :또 하나의 눈이란.
 
응답 :“‘마음의 눈’이다. 우리의 두 눈은 보이는 것들만 주로 본다. 다시 말해 현상만 본다.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왜 두려운지, 왜 열등감이 있는지, 왜 욕심을 내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 고요의 공간에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달라진다. 현상 너머에 있는 의미의 세계를 보게 된다. 내가 왜 화가 나고, 왜 두려워하는지 알게 된다.”
 
질의 :당신은 대한성공회의 주교다. 성공회의 최고 수장인 관구장도 역임했다. 기독교의 주교가 왜 명상을 강조하나.
 
응답 :“예수님도 명상하셨다.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고 왔다’는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예수님이 홀로 산에 가서 뭘 하셨겠나. 명상을 한 거다. 예수는 영성가이자, 또한 명상가였다.”
 
질의 :오직 ‘예수’만 외치면 다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기독교 신앙에 명상이 반드시 필요한지 궁금하다.
 
응답 :“신앙인에게 ‘오직 예수’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배타성을 띠면 곤란하다. 예수의 영성은 사라지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배타성과 폐쇄성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오직 예수’가 우상이 되고 만다. 그건 바르게 예수를 믿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질의 :그렇다면 기독교의 명상이란.
 
응답 :“기독교에는 ‘렉시오 디비나’라는 영적 독서가 있다. 일종의 기독교 명상이다. 처음에 성경 말씀을 읽고, 그것을 묵상하고, 어떤 깨달음이 있으면 그걸 통해 하느님과 대화하는 식이다.”
 
질의 :그냥 기도하면 되지, 굳이 명상이 필요하냐고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응답 :“명상은 기독교에서 거부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묵상이나 기도가 사실은 다 명상이다. 내 욕망을 신에게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기도가 아니다. 명상을 통해 하느님과 대화하는 일, 그게 바로 기도다.”
 
윤 주교는 기독교가 명상을 도외시하거나 배척하면 결국 교리적인 도그마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그런 틀 속에만 갇혀 있다면 예수님의 영성에는 도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양에서는 요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운동’이 호응을 받고 있다. ‘나는 영성적이지, 종교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영성을 찾지, 종교를 찾는 게 아니다. 그들이 왜 ‘종교’를 거부하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질의 :그들이 거부하는 ‘종교’란 어떤 건가.
 
응답 :“맹목적인 신앙과 틀에 박힌 규범, 배타성과 율법주의에 찌든 종교다. 예수나 붓다는 영성적인 존재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성적 가르침을 종교적인 틀로 가두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영성은 약화되고, 종교성만 강화된다. 알맹이는 놓치고 껍데기만 붙드는 식이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종교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영성적이 되려고 애를 쓸 때 그리스도를 더 닮아가게 된다.”
 
-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