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은 “지난해 8월 평생 몸담았던 전북 임실군 덕치초등학교 교사직에서 정년 퇴임한 뒤 글쓰거나 강연다니거나 아니면 논다”고 했다. [창비 제공] | |
김 시인은 대뜸 “맞다. 시집을 대부분 봄에 냈던 것 같다”고 답했다. 흐벅진 육자배기라고나 할까. 그의 꽃 예찬은 볼만했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산천을 깨우면 꽃이 피잖아요? 굉~장하지요. 꽃이 지면 새 잎이 나잖아요? 그럼 어마어마하죠. 거창하고 장엄하구요. 나이 들어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예전엔 꽃 피는 계절이면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였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목은 ‘수양버들’이지만 이번 시집에서도 ‘꽃’은 최다 출장기록 세우는 프로축구 선수처럼 자주 등장한다.
우선 그는 거저 피는 꽃은 없다고 노래한다. “가난 없이 노란 꽃 없다. 고통 없이 피는 흰 꽃 없다. 기다림 없이 붉은 꽃 없다”(‘성우에게’ 부분). 꽃은 한편 정열의 화신이기도 하다. “터질 것 같은 사랑으로 가득 찬 여인이 내미는 손끝으로/뜨거운 피들이 몰려 툭툭 터지던/그 희고 고운 정열의 아름다운 꽃, 꽃 이파리들, 환희여!”(‘달콤한 사랑’ 부분).
한바탕 꽃의 도취로부터 벗어나면 그제야 비로소 시집 안의 다른 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인은 “트럭 잡화장수가 된 제자의 딸 얘기를 통해 대물림되는 양극화 문제 같은 걸 이번 시집에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랑’ ‘세희’가 그런 시들이다. 그런 시인의 말과 달리 정작 눈길을 끄는 건 ‘물새’라는 부제가 붙은 ‘섬진강 28’같은 시다.
“희고 고운 모래밭을 걸어 쭈뼛쭈뼛 너는 강물로 가거라./희미한 발자국이 모래 속에 숨은 바람을 모은다./바람아, 바람아, 물가에 가지 마라./작고, 흰 배를 뒤집는 피라미떼들, 햇볕을 쬔다./천년을 뒹굴어온 모래알 몇개를 허무는 네 발소리를 들으려고/강물은 하루종일 귀를 모으며 흐른다.” 겨우 존재하는 작고 여린, 그래서 이순(耳順)을 넘긴 시인의 눈에만 간신히 포착되는, 미시(微視) 우주의 드라마가 섬진강변에는 있다.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