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46)씨의 글은 사람을 울린다. 실컷 울고 난 뒤 툭툭 털고 일어나게 한다. 출간 한 달 만에 15만 명이 읽은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가 그랬다. 한국 문단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잡은 그녀는 “(독자도, 작가도) 행복하라고 (글을) 쓴다”고 했다.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 원고를 쓰면서도 그랬단다. [창비 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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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세에 그것도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계속 쓰고 계시다는 것은,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무슨 커다란 장벽 앞에 선 듯해 아득해지는 나 같은 후배에게는 무조건 우러러보이는 일이다.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를 읽었을 때 선생에 대한 탄성은 최고조였다. “아휴, 선생님도 참!” 연발, “아휴, 선생님도!”하면서 이미 계간지에 발표될 때마다 챙겨 읽었는데도 단행본으로 묶여져 있는 9편의 단편들을 매편 아껴가며 그러나 아주 빨리 읽었다. 좀 천천히 읽고 싶어도 박완서 선생의 소설은 그럴 수가 없다. 이유는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시선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것도 내가 숨길 수 있으면 숨겨서 남은 모르게 하고 싶었던 것들이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는데, 참 기묘한 것은 그것이 통쾌할 뿐 아니라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까지 든다는 것이다.
『친절한 복희씨』에 실린 작품들은 선생 세대를 위해 바친 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세대들이 겪은 노고와,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꿈(가끔 그 꿈은 사랑이나 복수로 실현되기도 한다)들이 때로 격렬하게 때로 여일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서 꿈틀거린다. 인생을 거의 다 살아낸 이들이 화자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실버 문학’의 탄생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는 지하철 안에서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 『친절한 복희씨』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이처럼 선생의 소설은 재미있게 단숨에 읽히지만 오래 두고두고 되씹게 만든다. 거기엔 인생의 단맛과 쓴맛,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두루 꿰뚫어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풍부한 울림이 담겨 있다. 선생의 글은 신랄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으며,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쉽사리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선생 특유의 긴장, 유머, 까탈스러움이 새해에도 계속되어 어서 다음 책을 품에 안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친절한 복희씨』=박완서(78)씨가 2007년 발표한 소설집이다.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의 제목을 패러디했다. 열 아홉 꽃다운 나이에 애 딸린 홀아비와 결혼해 오남매에다 손자 손녀까지 길러냈지만 말년에 중풍 걸린 남편을 돌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화자 복희씨의 이야기다. 2001년 제 1회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그리움을 위하여’도 담겨있다. 총 9편의 단편은 대개 황혼에 접어든 노인들의 신산한 삶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품이다.
◆신경숙=1963년 전라북도 정읍 출생. 8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대표작으로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리진』 『엄마를 부탁해』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만해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