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

김원우- 이문환 [플라스틱 아일랜드]

구름뜰 2009. 3. 25. 23:26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 ④ 김원우 → 이문환 『플라스틱 아일랜드』 [중앙일보]

영화보다 현란하다 핀셋처럼 꼼꼼하다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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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소설가 김원우씨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2008년 대산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장편이다. 김씨는 “요즘 소설들이 감상적으로만 흘러가는 와중에 드물게 도시의 속성과 경제의 이면을 제대로 풀어낸 작품”이라며 “내 소견으론 최종 후보작 중 제일 나았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돈과 섹스는 자본주의의 활력을 부추기고, 그 번영을 떠받치는 구심점이다. 따라서 그것의 물신화 경향과 그것들끼리의 호화찬란한 호환구조는 더러 훌륭한 소설의 중심 테마로 떠오르기에 족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자들은 그 만능의 두 요물을 해석, 활용, 체험하는 현장 실습에 관한 한 작가들보다 더 전문가이고, 그들 스스로 자본주의의 미덕을 선전하는 합창단원임을 자임한다.

이문환씨의 장편소설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오늘날 서울의 중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적·배금주의적 풍요에 대한 적나라한 해부도이자, 한국 특유의 천박한 ‘현대성’을 마구 소비하는 데 용맹정진하는 여러 젊음의 발악적 행태를 거침없이 토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좀더 부언하면 이 소설에는 포스트모던한 사회상의 최첨단적 현상이라 할 여러 사실적 도구·제도·기능 따위가 서로 앞다투어 각축을 벌이고, 어떤 파멸을 향해 힘찬 질주를 서슴지 않는다. 이를테면 섹스 돌(인형)과의 환상적인 대화, 돈의 흐름을 좇는 여의도 증권사 직원들의 숨가쁜 업무 현황, 집단 성교를 사주하기 위해 또다른 ‘회사’형 조직 만들기, 현대음악의 광적 리듬에 발맞추는 성전환자의 반(反)현실적 일상 같은 리얼한 콘텐트들이 다량으로, 착종의 도가니 속에서, 감각적 문장에 힘입어 제가끔의 욕망의 최대치를 재빨리 구현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독서량이 상당한 소설 매니어라면 이런 면면에서 벌써 동궤를 걷는 일본의 청춘물 소설과 그 엽기적·변태적·가학적 디테일들을 떠올릴지 모르나, 『플라스틱 아일랜드』의 속살은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서울적이며 오히려 영화적·애니메이션적이다. 또한 돈과 섹스의 착잡한 변화무쌍을 의젓하게 포착해가는 한 늙은이의 야심과 그 직업적 도전의식의 메마른 일상을 그리고 있는 독일 소설가 마르틴 발저의 최신작 『불안의 꽃』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플라스틱 아일랜드』의 덕목이다.

물론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만큼 싱싱하며, 표피적이긴 해도 우리 현실의 구체성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많이 쓸어담고 있지만, 자본주의의 위대한 미덕에 가려 있는 추악한 악덕처럼 아쉬운 소설적 미비도 없지는 않다. 우선 잡학의 경지를 읽는 재미도 수월찮으나 논평적 문맥의 구축과 자기 참조적·반성적 스타일의 확보를 통해 우리 현실에 대한 신랄한 통박을 덧붙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 중 한 쌍의 남녀를 죽이는 상투적 수법도 자본주의의 속성 중 하나인 인명경시 같은 악덕을 보는 듯해서 마땅찮고, 느긋한 사기꾼으로서 끝까지 돈의 힘에 의해 사기가 들통 나지 않는 한 인물이 우리 소설사상 유니크한 개성인데도 다소 소홀하게 취급된 것도 씁쓸하다. 게다가 이 소설의 지배적인 정조가 영화적 기법을 방불케 하는데 소설의 주체성이 훨씬 두드러졌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름조차 초면인 이문환씨의 건필과 정진을 바랄 따름이다.



사진=안성식 기자

◆김원우=수백 년 퇴적된 언어의 지층을 뚫고 들어가 채집한 화석화된 말들로 문장을 빚어내는 소설가다. 1947년 경남 진주 출생. 77년 문예전문지 ‘한국문학’으로 등단했다. 창작집 『무기질 청년』 『인생 공부』 등과 장편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등이 있다.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