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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못으로 긁힌 듯한/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주었다// 나는 이제/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나를 놓아 주신다.”
어린시절 남자아이들은 풍뎅이 다리를 뱅뱅 돌리며 갖고 놀았다. 그러다 인심 쓰듯 놓아주면 풍뎅이는 제 몸뚱이가 돌려진 반대로 뱅뱅 돌아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그처럼 主도 나 또는 우리를,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 뱅뱅 돌리며 놀리다가 시들해지면 땅바닥에 놓아 주는 게 아닐까.
시를 다시 보니 시인은 자신의 외모만큼이나 여리고 작은 순결한 영혼이어서, 풍뎅이 몸통을 돌리며 가지고 논 건 아니었다.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에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을 보고 징그럽다고 얼른 그 풍뎅이를 놓아 준 거였다. 하지만 상처의 연민을 넘어 ‘징그러움’으로 위선을 깨고, ‘상처의 아문 자국’으로 만신창이가 된 인간을 일깨워주는 시였다.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 가지고 놀던 主도 종내는 놓아 버릴 만큼 비루하고 비속한 우리 존재. 반론해 보고 싶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전적 진실일지 모른다.
김영승의 시는 고도의 지적 통찰과 직관, 성찰을 요한다. 그러면서도 눈물겹고, 따뜻하고 깨끗하다. 심한 비속어의 남발이 꽤 많음에도 찌푸리게 하지 않고 자신과 세상의 속을 파 들여다보게 하는 튼튼한 사유가 있다. 행동이 아니라 사유인 한, 나약하되 맑고 순결한 영혼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히 높은 조건이다.
우리 시의 위선을 떨어버리고 자신을 포함 세상을 자조, 조롱하지만, 그 저변을 흐르는 시인의 마음은 사랑과 평화, 연민의 연대에 깨어 눈물겨운 풍경도 그려내는 것이다. 순결한 영혼, 시적 천재라는 믿음과 함께 영적인 심플한 시인이라는 개인적 사랑을 가지고 있다.
『반성』은 지난 연대 문학판에서 많이 회자돼 주목받았으나 문학상의 영예는 없었던 시집이다. 늦었지만 ‘주목받았으나 어느 하나의 문학상도 받지 못했던 작품에 수여되는 문학상’이라는 특별하고 긴 이름의 문학상이 만들어져 그런 상이라도 받았으면 싶은 시집이다.
◆『반성』(민음사, 1987년 초판/2007년 재출간)=김영승(50) 시인이 오로지 ‘반성’이란 제목을 붙인 시들로만 한 권을 채워낸 시집.
◆이진명(사진)=1990년 계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단 한 사람』『세워진 사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