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 처럼 한복입을 일이 생겼다.
지난주 맞춘 것인데 어제 저녁에서야 도착한 빛고운 한복이다.
아버지 칠순을 맞아 형제들과 부모님이 함께 지난주에 서문시장엘 갔었다.
당연우리가 해 입을 생각이었는데, 한복집에서 잔치를 하게 되면 부모는 자녀들에게 옷을 해주고
잔치상은 자녀가 해드리는 것이 예의 이고 전통이라고 알려 주었다.
엄마는 알고 계셨는지 당연 내가 해주마 하셨다.....세상에 공짜란 없는건지.....ㅎㅎ
기어코 해주시겠다고 해서 얻어 입게 된 한복이다.
어릴적 색동저고리 입고 좋아했던 그 시절 생각이 난다.
한복도 조금씩 유행이 있는 것 같다. 두루마기 길이가 자꾸 짧아지는 것 같더니
이제는 아예 치마저고리 위에 조끼(배자)만 입는게 유행이라고 한다.
남자한복도 바지 저고리 위에 마고자 형태처럼 길이는 긴데 팔은 없는 조끼(배자)형이다.
두루마기나 마고자를 입을때보다 실내 활동이 훨씬 편할것 같긴하다.
여자들도 치마말과 저고리의 겹쳐지는 부분이 깔금하게 덮여서 한복차림이 조금더 편할 것 같다.
내 고향은 집성촌이다. 할아버지의 형제 자손들까지 다 모여 살다보니,
대처로 떠난 자손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5촌이나 6촌 아주머니 아재들까지
일가친척이 장난아니게 많다.
어릴적 기억에 명절에 제사를 지내면 큰집 순으로 아침, 점심, 저녁, 찾아가면서 지냈다.
우리 큰집은 점심을 지냈다. 제상이 안방에 차려지고 항렬이 가장 높은 할아버지 대만 안방에 드셨다.
큰아버지 아버지는 마루에 서셨고, 아버지 형제도 많아서 막내작은아버지는 마당멍석 제일 앞줄에
서기도 했다. 그렇게 마당에도 기본은 4-5줄은 서야 했다.
물론 여자들은 참석하지 않고 남자들 만이었는데도 자손이 그렇게 번창했었다.
마당에도 당근 사열대 사열하듯이 서열대로 섰는데 나이가 어린 서너살박이 좀 이른듯한
사내아이들도 그 대열에 참석시켰었다. 그런 의식에 어린 자녀를 참석시키는 부모는
아들을 그 줄에 끼워넣어 집안조상에게 신고식 하는 의미도 있고,
제의식에 참석하게된 아들을 둔 자신과 자식의 존재감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을것이다.
그 멍석은 사내들만 설수 있는 특권같은 것이었다.
고추라야 가능한 자리였으니까.. 그렇다고 그 멍석에 서지 못한 우리 딸들이 서운해 했거나
서고 싶어하는 이는 내 보기엔 하나도 없었던 듯 하다.
아들을 중시하는 아녀자들에겐 그 멍석이 우월감을 줄 정도로 상징적이었을지 몰라도
어린맘에도 딸이어서 그런지 그리 매력적인 자리같지도 않았고 그멍석이 부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뒷줄에 처음으로 참석한 어린아들들은 대체로 집중력이 떨어졌고
얼떨결에 앞줄에서 절을 하면 따라서 절을 하는 어슬픈 모습을 연출했다.
예를 갖추는 제의식을 지켜보는 여인네들에겐 아이들의 어슬픈 몸짓은 놓칠수 없는 재밌는 풍경이었다.
어릴적 명절이 늘 즐겁기만 했다는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분명 지금보다 어렵고 힘든시기였지만
집안 아녀자들의 단합과 정성, 나보다는 집안을 먼저 생각했던
아마도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 덕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직계이거나 형제 자매의 잔치 정도여야 입게 되는 것이 한복이다.
우리 집안에는 그렇게 불편해서 입기 꺼려하는는 한복을 행사만 있으면 차려입는 '한복부대'가 있다.
사촌이어도 잘 입지 않은것을 5촌 6촌이어서 안 입어도 되건만 잔치만 있으면
일괄적으로 한복을 입으시는 어들들을 일컬어서 우리 딸들이 붙인 호칭인데 '부대'라고 할 만큼 숫자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나이가 조금 젊으신 숙모님이나 고모님들은
한복을 들고 오셨어도 '안 입으면 안될까'하는 표정이지만, 엄마는 어림없다.
그러면 엄마보다 손아래인 고모도 아무 말 없이 입으신다.
그외 손 윗분들은 익숙해서 그런지 입으시고 어쨌거나 잔칫날이면 이 한복부대 덕분에 아직도
고전전인 냄새가 풀풀 나는 시골사람들 느낌을 면하질 못하고 있다.
우리 집안 딸들은 이런 대식구인 친정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아마도 우리 집안으로 시집온 올캐들에겐 참 어려운 것이 이 '한복부대'일 것이다.
집안에 어른이 많다는 건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편리한 일보다 불편한 일이 많은것도 어쩔수 없는 이치인것이다.
한복을 입는 것이 집안의 체통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해서 어른들이 한복을 못 벗어나는 것처럼,
소소한 일상들에서 우리 집안 올캐들이 감수해야 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에 나는 큰집이든 작은집이든 올캐들에겐
그저 고맙고 수고 한다는 마음 뿐이다.
엄마는 며느리 다섯중에 두번째인데 큰엄마가 몸이 편찮으셔서 최근간에는 파워가 세졌다. ㅎㅎ
은근 대장 노릇을 하신다. 그러니까 손아래 동서가 3명이나 있고, 손아래 시누도 있고,,
그외에도 질부들을 비롯 엄청 많다.
평소에는 별로 표시날일도 없지만 대소사를 앞두고 어떤 의견이 나왔을때는 꼼짝없이 따르는
숙모님들을 볼때마다 시댁의 서열은 환갑을 지났어도 엄연하단걸 보게 된다.
투덜대면서도 꼭 한복 챙겨오시고 입으시는 우리 한복부대 친척들
아마 이번 칠순에도 입고 오실것 같다. ㅎㅎ
예의 범절을 지키는건 좋아서 지켜야지, 그것때문에 불편하거나 스트레스가 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지키는 사람이 힘들다거나 손해본다는 느낌은 덜지 않고 뿌듯해야 제대로 된 예의 범절일터인데,
그런 면에서 어렵고 번거로운 범절은 조금더 간소화 하고 편리하게 한다면
훨씬 오래도록 남을 문화로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복도 유행이 있는 것처럼,,
나부터도 이렇게 한복 입기를 즐기지 않은걸 보면
한세대, 아니 머지 않아 한복은 혼주나 신랑각시만 입게되는 그런 옷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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