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파도 - 이경림

구름뜰 2010. 8. 11. 08:25

 

 

내사 천날만날 내 혼자 설설 기다가

절절 끓다가 뒤로 벌렁 자빠지다가

엉덩짝이 깨지도록 엉덩방아를 찧어보다가

꾸역꾸역 다시 일어서다가

오장육부 쥐어 뜯으며 해악도부려보다가 급기야는

절벽 같은 세상 지 대가리찧으며 대성통곡도 해 보지만

우짜겠노 남는 건 뿌연 물보라 뿐인기라

일년하고 삼백날 출렁이지 않는 날 메날이나 되것노마는

그래도 우짜다 함뿍 거짓처럼 바람자고 쨍한 햇살에 바스스

젖은 가슴 꺼내 말리는 날 있어

이 싯푸른 희망 한 둥치 놓을 길 없나니

 

**여름날 읽지 않을 수 없는 시다.

그러나 파도를 이렇게 육화시켜 노래하고 있는 시도 드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파도에 이입된 시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보편성에 놀란다.

왜냐하면 거기에 나의 얼굴도 보이기 때문이다.

백사장에서 파도를 오래 들여다본 이들은 다 이런 소리를 들었으리라.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시는 이렇게 눈치재지 못한 사실을 우리 대신 노래한다.

여기 시의 끝없는 신선함이 있으리라.

이와 함께 이 시의 구성진 사투리의 음조,또한 가슴에 오래 출렁이리라.

- 강은교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0.08.17
별헤는 밤 - 윤동주  (0) 2010.08.14
꽃피어라 내 사랑아 - 용혜원  (0) 2010.08.09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0) 2010.08.08
나에게 이런 자녀를 주소서  (0) 2010.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