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다정가(多情歌)

구름뜰 2010. 12. 8. 08:46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졔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ㅣ야 아랴마난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야 잠 못 드러 하노라.

 -- 이조년

 

이 시조는 포개짐의 시학으로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배꽃의 흰 빛 위에 흰 달이 포개진다.

은하수는 깊은 밤임을 드러내는 삼경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정함은 병이 될 정도로 깊어졌으니

그 병은 다정함이 여러 겁으로 포개져서 생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잠을 못 이룬다는 사연이 자규와 화자 두겹으로 포개진다.

세 줄밖에 안되는 짧은 시에서 네 번이나 시어의 이미지가 중첩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포개짐의 서정은 자연과 화자를 하나로 합치시키는 데 성공적인 구실을 한다.

그러니 그 합일은 전체적으로 나와 이화, 은한, 자규와의 정서의 합일이기는 하지만

몰아일체 물심일여(物心一如)와 같은 말로 정리되는

영원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는 질이 다른 것이다.

이 합일은 순간적, 현실적 느낌의 포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시를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면, 당시의 잘못된 정치와 임금을 안타까워하는

작자의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정가(多情歌)'라고도 부르는 이 시조는

전해오는 고시조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잠못 이루는 밤의 심정을 자연을 통해 표현한 절구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어 풀이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돌아서) 자정 무렵을 알리는 때에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정서를 자규가 알고서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다정다감한 나는 그것이 병인 듯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출전 <병와가곡집>, <청구영언>
이조년: 고려 말기의 학자 정치가 호는 매운당 또는 백화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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