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구름뜰 2011. 2. 7. 09:30

 

 

벽과 문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도 또한 벽이지요

절망이 철벽 같을 때

새벽조차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지요

세상에 벽이 많다고 다

낭비벽이 되는 건 아닐 테지요

벽마다 등을 대고 물끄러니

구름을 보다보면

벽처럼 든든한 벽도 없고

허공처럼 큰 문은 없을 듯하지요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

--인도의 선각자 비노바 바베의 말

- 천양희

 

 

 

시인이야 말로 단어를 도구로 쓰는 자들.

말의 유희,

언어의 유희.

그속에서 상징과 은유를 갖추었을때

시가 된다.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정호승

 

 

벽,

무너뜨리지 않은 벽,

따스하게 쓰다듬는 벽,

 

쓰다듬다가

어느새 승화된 벽을 나눌줄 아는

이 도구화된 언어의 유희

 

 


비노바 바베의 얘기다.
"한 집을 예로 들어봅시다. 당신은 그 집에 들어가고자 하나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당신이 벽을 뚫고 들어가려고 머리를 부딪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머리만 깨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작은 문 하나를 발견한다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고
또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문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주를 만나보면 그는 많은 결함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기심은 마치 벽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은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은 선함이 그것입니다.


당신은 그 문을 찾으려고 준비하면서 당신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든 개의치 말고 문을 찾으십시오.
가끔은 나도 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결함은 내가 그의 단점들에 대항해서 내 머리를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노바 바베
간디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바베는

인도 전역을 걸어서 순례하며 지주들에게 땅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20년 동안 토지헌납운동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만들어준 땅이

스코틀랜드 만큼 넓었다고 한다.

 
그는 지주들과 싸우거나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선함'을 일깨워

베풀기회와 하늘에 보화를 쌓을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바베는 사람의 선함에 대한 믿음으로

못할일은 하나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거룩한 성자들의 욕심없는 마음과

선함에 대한 의지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다.

사람마다의 그릇이 다르지만

그 한계가 끝 없음을 보여주는 성자들의 삶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 욕심없는 마음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줄을 사람들이 알고 후대가 알아보고

그래서 인간의 삶은 더욱더 진화해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잃어갈수록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소중한 가치는 더욱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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