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나는 포도주

구름뜰 2011. 2. 8. 09:12

 

 

 

 

나는 포도주
햇볕과 바람과 비와 인간 속에서

저절로 익은 포도주

나를 마셔라
부드럽고 달콤새콤한 맛은 모두
고뇌의 흔적이 낳은 은총
눈물에든 웃음에든 맘껏 섞어 마셔라
태풍과 폭우와 욕망과 배덕의 식은 재 속에서도
살아남아 익은 포도주

와서 나를 마셔라
돼지에게는 돼지의 맛
소에게는 소의 맛
나귀에게는 나귀의 맛
개에게는 개의 맛
인간에게는 인간의 맛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어떤 맛과도 교제한다

와서 맛보라
저절로 익은 것들은 무엇보다도 풍성하고 따뜻하다
理想에 겁먹고 性에 굶주리고 향수에 시달린 이들이여,
서슴없이 와서 나를 맛보라
자연과 인간의 눈물이 죽도록 사랑해서 만들어놓은
十惡十善의 맛이 골고루 응축되어 있다

원하는 맛대로 나를 마셔라
저절로 익은 향기는 모두 에로스의 핏줄
상상할 수 없는 태고의 사랑이 내 속에 녹아 있다
마음껏 나를 마셔 나를 발견하고 나와 작별하라

나는 포도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커다란 축복
언제나 나는 그대들 속에
숙명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다

-(김상미·시인, 1957-)


 

"진홍의 밀납 속에 갇혀서,

내 그대 향해 목청 높여 부르노라,

빛과 우정이 넘치는 노래를!
나는 알고 있나니,

내게 생명을 주고 영혼을 주려면,
저 불타는 언덕배기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땀과 찌는 듯한 태양이 있어야 하는가를,
그러나 나는 헛되거나 해롭지 않으리,
노동에 지친 한 사내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릴 때면 내 기쁨 한량없기에
그의 뜨거운 가슴 속은 정다운 무덤이 되어
내 써늘한 지하실보다 한결 더 아늑하기에.
(중략)
내 그대 가슴속으로 떨어져, 신이 드시는 식물성 양식,
영원한 파종자가 뿌린 진귀한 씨앗이 되리라,
우리들의 사랑에서 시가 움터서
한 송이 귀한 꽃처럼 신을 향해 뿜어 오르도록!"

-보들레르

 

 

술이란 술술넘어간다고 술이 아니라.

물과 불 (水火) 수불이라는 말이 줄어서

술이라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과 불, 완전 반대의 성질이지요.

어원이야 어찌 되었든 술로 인해 어울리고 융화되는 마음이 있지요.

우정이나 사랑, 예술적관심 인간적인 만남,

그 어떤 인간사의 만남에도 술이 없다면 얼마나 메마를까요.

술술마시지 말고 술을 사람대하듯, 그 마음을 만나고 정신을 만나듯

대한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최고의 윤활유가 아닐까 합니다.

오래된 포도주처럼

사람과 사람사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좋아지는 포도주같은 그런 만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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