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포화속으로

구름뜰 2011. 3. 1. 15:13

3,1절 이라 그런지 영화 '포화속으로'를 kbs에서 방영해 주었다.

개봉당시 반응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학도병에 관한 무지를

깨울수 있는 작품이어서 뜻깊게 본 작품이었다.

 

 

어제는 대구를 한바퀴 돌았다.

보모님을 모시고 유명한 먹거리 골목도 가고

여기저기 옛길들을 더듬으며 돈 셈이다.

 

그 중 예전에는 자주 들렀지만  순환도로가 생기고 부터는 

작정하고 들르지 않으면 지나치게만 되던 앞산공원엘 정말 오랫만에 들렀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섰을 때

케이블카 타고 올라갔던 추억보따리를 풀어내셨고,

그때의 할아버지 반응을 얘기해 주셔서

돌아가신지 30년도 넘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앞산공원 케블카 타는곳 바로 아래쪽에는 <낙동강선전기념관>이 있었다.

대구에 살았어도 그 역사적 사실보다, 

탱크나 비행기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무기류 실물이 전시되어 있어서,

부끄럽게도 사내아이들이  와서 보면 좋아하겠다는 정도의 생각만 했던 곳이다. .

 

어제 기념관 정원을 돌아보면서 

그것들이 6,25당시에 썼던 미제 탱크, 포, 장갑차, 전투비행기, 자주포, 라는걸 알게 되었다. 

 

 

한바퀴 돌아 마지막 부분에 세워진 조각상에 눈이 갔다.

'학도병 동상'이었다.

동상을 돌아 기념관 건물 기단벽에는 학도병들의 평면조각상이 있었다.

학도병에 대한 상세한 안내문도 있었다.

어제 이 곳을 돌면서 영화 '포화속으로'의 학도병 이야기들이 생각났었는데 ..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감회가 더욱 새로워졌다.

(영화속 복선으로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단체사진 촬영장면이다.)

 

 

 

학도병 동상 곁에는 학도병에 관한 안내문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20만여 청소년 애국 학도들은 펜 대신 총을 들고 구국 전선에 참전하여

7,000여명의 학도의용병이 산화하였으며

조국의 강토를 지키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였다 

 

 

이들은 당시 대구역 앞에 설치된 국방부 정훈국 직속 대한

학도 의용대에 자진 입대하였다.

특히 학도의용군의 활약이 돋보인 것은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공방전에서 였다.

 

포항전투, 기계 안강전투 영천전투 , 다부동전투, 현풍지구 전투,

마산진투에 투입 대구사수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51년 3월 16일 종군학생 복교령으로 학교로 복교하였으니 현지 군번을 부여받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수도 10만 여명에 dl른다는 사실에서

이들에 국가에 기여한바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의 거룩한 애국애족 정신은 천추만대에 깊이 빛날 것이다.

--대한민국 학도의용군회

 

 

'포화속으로'도 실제 포항여중에서 50년 8월 11일에 

육군 3사단 학도의용군 71명의 학도병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발포명령이 있기까지는 포를 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괴뢰군의 점령을 보면서 총을 쏠 수 밖에 없었다는 증언과

마지막에 적이 30미터 앞까지 왔었다는 증언까지

살아남은 그 당시 학도병의 육성 인터뷰도 들을 수 있다 영화말미에...

 

6,25로 서울이 사흘만에 수복되고 낙동강만 남았을때. 영화속 학도병들로 인해

인민군의 남침을 11시간 정도 지연시켰다는 성과도 자막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학도병이었던 생존자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이  미안하고, 마음의 울음이 아직도 크다"는 회고를 들을 수 있었다. 

겪어보지 않아서 차마 무어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런 일일뿐이다.

 

 

 

영화속에서 얼떨결에 학생신분으로 대장을 맡은 학도병(탑분),

총알에 맞아 숨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인민군이 "어무이, 어무이"를 부르며 사경을 헤매는 걸 보게된다.

리더로서 보여야 할 모습으로 직접 확인사실을 한후의 독백이 가슴이 찡하게 와 닿았다.

기억을 떠올리자면 대충 이런 대사였다.

 

"어머니, 오늘은 제가 북한 괴로군을 죽였습니다.

제가 아는 괴뢰군은 머리에 뿔이달린 괴수였는데

제가 본 괴뢰군은 어머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민군 대장(차승원분)이 어린 학도병들에게 투항할것을 종용하면서

학교 깃대에서 태극기를 내리고 백기를 달면 너희들을 다 살려주겠노라하며 하루 동안의  말미를 주지만,

학도병들의 투지와 용기로 싸움이 벌어지고

초토화되다 싶이한 현장에서 자신의 기대에 어긋한 현장 상황을 보고 

학도병대장(탑)을 쏴 죽이는 장면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랐는데,

어쩌겠노.  동무는 남한에서 태어났고, 나는 북조선에서 태어났으니.. " 

 

 

 

총에 맞은 탑을 늦게 달려온 군인이 "미안해"라며 (김승우분)

안아주는 마지막 장면이다.

 

 

 

 

 

오늘은 포화속으로 라는 영화가 잔잔한 감동을 준 날이다.

 

각설하고,,

월차를 내서 부모님과 나들이를 계획한 것은 3,1절이 결혼기념일이라서다,

언제나 기념일이고 휴일이어서 뒷좌석에 부모님 태우고 나들이 다니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뿌듯한데..센스있는 엄마에게서 오늘 아침 갑자기 전화를 주셨다.

 

"기념일 축하한다. 어제 너무 고마웠다.. 조금 붙였으니 맛난것 사 먹거나 옷 사입어라"

어쩔꺼나 하나 드리면 언제나 둘로 갚아주시는 부모님,

부모님께는 언제나 내가 한 일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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