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여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
이 봄에는 정말 따스하고 싶어요
별것 아닌 일들 잠속까지 데려와 봄밤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간절한 말이 비틀리고 눙쳐놓은 진심이 왜곡되어도 조금 더 바라만 볼래요
말은 오염이 심해 그대에게 가는 동안 또다시 오염되기 일쑤예요.
그런 눅진한 찌꺼길랑은 이 봄볕에 말리고 싶어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밭 매다가 예쁜 여자랑 달아나고 싶네요.
섬진강 아름다운 백리 꽃길 따라 매화 보러가고 싶네요.
발갛게 꽃물 든 여자의 볼에 입 맞추고 싶네요.
구구절절 설명 없이 할 말 다하고 있는 이 고수의 말부림을 보세요.
꼭 말이 많아야 내용이 전달되는 건 아니잖아요.
봄에는 많은 것이 용서되기도 해요.
너도 나도 꽃 피니까요. 아름다우니까요.
피는 꽃 속에서 이미 지는 꽃을 예감하며 우리 삶의 속절없음까지 보니까요.
사실 무엇보다 우리가 꽃 아닌 걸 이미 아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단순하게 봄빛 속에 취하는 거지요.
텃밭 매다가 호미 던져두고 내 마음에 내가 취해 달아나 보는 거지요.
그거 하나 정도 봄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거 아닐까요.
--이규리 시인
지난 삼월부터 시작한 시강좌가 있습니다..
고맙고 반갑게도 올 한 해 동안 대구 매일신문 '시와함께' 란을
기고하시는 이규리시인이 담당 교수님입니다.
수강생 면면을 소개하자면, 정년퇴직한 교장선생님, 도서관장님을 비롯 남성분이 네분이고.
여성은 젊은 스물여덟살의 처자에서 오학년 중반까지 20명 출석률은 백프로 입니다.
제 눈에 들어오는 이쁜 학생은 하얀와이셔츠에 정장을 한 교장선생님입니다.
깔끔한 모습이 금방 말린 빨랫감처럼 뽀송해 보입니다..
합평하기위해 시를 써오는데 당신이 써온 시는 이름을 적지 않고 내 놓으십니다.
부끄럽다구요.. 그래서 처음에만 몰랐지 이름 없는 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우리 학생들이 다아는데도 역시나 이름을 적지 않고 내십니다.
절에서 오래 지냈다는 지금은 전업주부(남자분)라는 회장님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중국요리를 배우고 있다는데
감성이 풍부해서 수업 중에 불쑥불쑥 詩心이 발동 선생님께 큐피트를 날립니다.
선생님 좋아라 어쩔줄몰라하시며 기꺼이 받아주시니,
그 모습 담임만 쳐다보는 초등학교 1학년 같습니다.
그저께 화요일 햇살이 유독 따스한 수업시간에
위 '봄날'을 교수님이 낭송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위 시평처럼, 말씀하셨지요.
봄날엔, 봄날엔 이러고 싶지 않느냐고?
예쁜여자랑,,
때로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도 한 번 해 보라고,,
너도 나도 피는 때.
봄날은 용서가 될 것 같은 때.
가끔은 호미를 던져둘 줄도 알라고.. ..
신났습니다.
제 마음이 붕 떠오르는데..
선생님 '연애'도 하라고 부추켰습니다!!.
연애를 하라..
한데 두가지 꼭 지키면서 하라고 하더군요.
하나는 들키지만 말아라.
또 하나는 들켜도 탈 없는 연애를 하라.. ㅎㅎ
수업중에 '봄날' 시를 날리고 싶어 문자메세지 작성을 했지요.
누군가가 얼른 떠오르지 않더군요..
옆에 앉은 친구도 열심히 문자를 하더군요.
물었더니 남편한데 날릴려고 했는데 용량과다라고..
제가 퉁박을 주었지요..
이런 시는 남편말고가 어떻겠느냐고?
친구왈 날릴곳이 없는데.. 어쩌라고..
하기사 저도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아서 임시보관함으로 저장해 두었지요. ㅎㅎ
시를 쓸려면 연애를 하라..
연애할때의 설렘을 가지고 세상을 보라는 이야기지요...
시인은 세상과 연애하면서 시로 소통하는 사람들 아닐까요.
드러내고도,
온전히 드러내고도 들키지 않을 줄 아는..
들켜도 충분히 아름다울 줄 아는.
나도 그런 연애를 꿈꾸는데 짝사랑만 하는 듯 합니다.
봄날
나도 피고
너도 피는 봄날,
따스해 지고 싶은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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