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시(詩)를 찾아서

구름뜰 2011. 8. 26. 09:33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잣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

 희성(1945~ )


상사화 피고 지니, 여름도 뒷걸음질이다. 선선해진 바람에 꽃은 생기를 잃었다.

봄부터 초록의 잎으로 햇살을 끌어모아 피운 진분홍 꽃이다.

꽃 피울 힘을 애써 지어낸 이파리는 꽃 피기 전에 스러졌다.

이파리 없이 외롭게 피어난 상사화 꽃에는 그래서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 담겼다.

바람에 스며든 가을 기미로 상사화 꽃대궁은 고개를 떨구고 기억 저편으로 돌아갈 채비다.

바람이 꽃에게 이제 그만 가라 한다. 그리움 남긴 채 사라지라 한다.

말(言)과 절(寺)로 이룬 시(詩)처럼 가까이 있어도 끝내 만나지 못하는 슬픈 운명이다.

한 번 더 간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예쁜 꽃, 고운 시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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