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리며
내 삶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그대 안의 더 작은 그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 어깨에 기대는 따뜻한 습기
내 가슴을 적시는 그대
은행나무 아래서 우산을 쓰고
자꾸자꾸 작아지는 은행나무 잎을 따라
나도 작아져 저 나뭇가지 끝 매달린 한 장의 나뭇잎이 된다.
거기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넌 누굴 기다리니 넌 누굴 기다리니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빗방울들의 소리인 줄도 몰라하면서
빗방울보다 아니 그 속의 더 작은 물방울보다 작아지는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
-원재훈
우리는 언제, 어떤 사람을 다르거나 낯설게 바라보게 될까요?
아마도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타자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의 신비는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을,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데도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점차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사랑이라는 감정, 가슴이 먼저 알아보는 일이지요.
이성이 아닌 감성 말입니다. 그 아름다운 감정이
대상의 무한성(전혀 아는 것이 없으므로)덕분에
또한 무한 가능성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무심코 살아가던 일상이 와해되는 그 지점,
오직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이 나 자신과는 너무나 다르고 낯설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결국 사랑에 빠진 우리는 기묘한 비대칭 상태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여기서의 비대칭은 자신의 욕망과 느낌은 나름대로 알고 있지만,
반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과 감정 상태는 거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시간을 우리의 감성형식으로 규정한 이후,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을 거치면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과령 과는 우리에게 기억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미래도 기대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물론 현재도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지각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지요.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개인의 기억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기대나 지각도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인간의 기억 능력으로 우리는 현재(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기억능력이 없다면 어제와 내일도 없을테고
오늘만 살겠지요.마치 동물들처럼 말입니다.
-기대 혹은 기억에 물들어 있는 현재라는 것,
예측할 수 없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열리는 현재라는 맥락을 구분할 수 있나요?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마주침만이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현재가 아닌,
새로운 현재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첫눈에 반 한 이성을 만난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은 분명 무한성을 갖고 있는 타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지 좋아하지 않을지,
혹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커피는 어떤 종류인지,
혹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는 바로 이 대목에서 그 혹은 그녀와의 만남이 주는 설렘과 당혹감이
진정한 현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랑에 빠지며 누구나 자신이 앞으로 완전히 달라질것이라는 점을 직감하지요
그래서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가 미래와의 관계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던 겁니다.
문제는 타자가 무한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내가 사전에 미리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사실 이 때문에 우리는 타자와의 마주침은
미래에 대한 설렘 혹은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 시인처럼 기다림과 설렘과 초조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타자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겸손함의 정조를 지닌 것이기도 합니다.
-강신주
그를 향하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규정할 수 없는 존재.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대
-내가, 내 삶에 그대가 오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 순간을
기다려온 것인 줄 몰라한다.
반가움, 설렘, 기다림, 그리고 또 기다림, 그런 숱한 가슴앓이들이
어찌 할 수 없는 그를 향한 겸손함의 정조라는.
여신 같은 은행나무 아래서 한없이 작아지는 시인.
사랑에 빠진 이의 순수한 번뇌와 겸손에서 오늘도 깨어있기를.
아프더라도 깨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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