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삼겹살

구름뜰 2012. 2. 15. 07:31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시간 이 넘도록

내 몸에서 고기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불에 익은 피, 연기가 된 살이

내 땀구멍마다 주름과 지문마다 가득차 있다.

배 고플 때 허겁지겁 먹었던

고소한 향은 사라지고

도살 직전의 독한 노린내만 남아

배부른 내 콧구멍을 솜뭉치 처럼 틀어막고 있다.

고기냄새를 성인의 후광처럼 쓰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린다

지하철안,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모습의 허공을 덮고 있는 고기냄새의 거푸집이

아직도 손잡이를 잡은 채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나를 차창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상쾌한 바람이 한꺼번에 고기냄새를 날려 보낸다.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쉬는 사이

고기냄새는 잠깐 파리떼처럼 날아 올랐다가

바로 끈적끈적한 발을 내 몸에 찰싹 붙인다

제 몸을 지글지글 지진손을

제 몸을 짓이긴 이빨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가

끈질기게 스며들고 있다.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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