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어제는 김장하는 날이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가장 맛있는 김치를 맛 보는 날이지요.
'그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마음같은 날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오기로 한 날, 기다려본 사람은 알지요.
이 시는 황지우 시인이 5분만에 쓴시라고 합니다.
좋은 시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의 순정이 잘 드러난 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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