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떼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대표적인 시
꽃입니다.
이 시를 패러디한 시들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패러디나 풍자는 그 골격이나 맥이
대중화되어 누구나 알고 있어야 더 맛이 나지요.
언어유희 재밌습니다.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며/장정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꽃/김춘수의 꽃을 거부하며/김세웅
누가 나를 불러다오
나는그에게 다가가
그의 치욕이 되고 싶다
건포도처럼 말라비틀어진 그의 자존심이
고통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혼돈 속에서 몸 비틀며 꽃은 피나니,
나는 너의 잔치가 아니라
치욕이고 싶다
오늘도 당신의 권리이지 의무인
저녁밥이 기다린다
솓갈을 뜰 때마다, 그대의 별에서
누가 삽으로 별을 한 술 한 술 퍼낸다
불러다오, 의미를 지워줄
그림자가 되고 싶다.
아, 불러다오, 그대의 따귀에 번쩍 불을 일으킬
나는 그대의
죄가 되고 싶다.
라면은 통통/장경린
우리 관군이 육전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 일본 함대를 적멸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다. 4번 타자
김봉연이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묵묵히 걸어나갔다. 최루탄 가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그들은
콘돔이나 좌약식 피임약을
상용하였으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외동아들이거나 외동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면은 통통
불어 있었다. 정확히 물을 3컵 만
재어서 부어 넣었는데. 어떻게. 면발이 통통
주기도문, 빌어먹을/박남철
(주기도문 패러디)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 주시지 않은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섣불리 빋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도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혼치 마식도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 버려 둬, 주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이버지시여
아멘 (믿습니다를 일흔 번 반복)
사진이야기..
지난 봄이었던가
지인의 집 부화기에서 갓 태어난 녀석입니다.
물기도 마르기 전인 것을 꺼내 놓으니
겨우 지탱하고 서는데 휘청 할 것 같아서 얼른 손을 갇다 댔는데
녀석 기대지 않고 결국 혼자 서더군요.
한 2-3분 정도 밖에 내 놓았는데
깃털도 금방 마르고
세상에 첫발 디딘 녀석 기특하지요
홀로서기.. 이쁘지요.
춥고 눈이 내릴거라고 합니다.
춥지만 그래도 마음엔 따뜻한 무엇하나 담고 지내는 날들이길 바랍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다구요.
그렇다면 요 어린 병아리 보는 듯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 주변을 보세요
내가 손 내밀고 싶은 곳이 의외로 많을 지도 모릅니다.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0) | 2012.12.12 |
---|---|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0) | 2012.12.10 |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0) | 2012.12.02 |
너를 기다리는 동안 (0) | 2012.11.30 |
건강한 슬픔 (0) | 201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