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숨쉬기
모든 구멍에서 나오는 구리고 비린 나를 들이마시기
제 못난 곳을 악착같이 감추어오다 감춘 사실마저 낱낱이 들키기
생긴 대로만 앉아 있어도 저절로 웃기는 놈, 비열한 놈, 한심한 놈이 되기
머리통에 피가 몰리는 기억을 꺼내 터진 뇌혈관 다시 터뜨리기
단단한 벽으로 된 입과 귀에다 깨지기 쉬운 간절한 말을 쑤셔 넣기
욕이 되려는 분노를 억지로 우그려뜨려 누르고 밝게 웃으며 대답하기
터져 나오는 비명을 녹여 나에게만 들리는 진한 한숨으로 바꾸기
숨구멍 막는 끈끈한 가래 같은 숨을 조심조심 뚫어가며 숨쉬기
긁으면 더 가려워지는 가려움, 긁느니 잘라내고 싶은 가려움을 긁어 키우기
고삐를 잡아 쥐고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겨도 안오는 잠을 강제로 자기
그냥 있기만 하기
-김기택
'가만히 앉아 숨쉬기 '
그냥 있기만 하기
1 연은 2 연을 다 잠재운 후에야 3연의 '그냥 있기만 하기'가 가능하다는 얘기 같습니다.
도서관 출입구가 양사방으로 나 있다 보니, 오늘은 전 직원들이 눈 치우기 바쁩니다.
1층에서 2층 오르는 사이에도 부지런한 손길들이 변화된 모습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의 할 일' 이란 시 이 사진과는 대조적이지요.
위 시 '그냥 있기만 하기'는 그러기 쉽지 않다는, 그냥 가만 있어도 가만있지 못하는 마음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보입니다. 가만있는 일은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생각도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오늘의 할 일' 중 그냥 있기만 하기. 하루에 한 번 쯤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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