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니요
절망스럽다니요
당신 안에 적이 있군요
권리를 빼앗기는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나날이 새로워지는 생의 의무를 망각하는 일은
더 슬프고 나쁜 일이에요
-송경동 (1967~)
‘안녕하십니까’와 ‘안녕들하십니까’의 눈에 보이는 차이라면 ‘들’이 하나 들고 빠짐 정도에 있겠지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들’이라는 끼어듦이 실은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다 싶었던 겁니다. 이를테면 전자의 ‘안녕’이 한 개인의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입말’에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의 ‘안녕들’은 한 개인을 넘어서서 댁네 살림살이 두루 평안한지를 살피는 이른바 마음을 주무르는 ‘글말’ 같다고나 할까요. 손의 기능 중에 글씨를 쓰라 하는 것도 글자의 기원 아래 손의 중요한 의무가 되었을 텐데요, 며칠 전 훈훈한 그 손맛을 보았습니다. 대자보라는 큰 종잇장을 빌려 써내려 간 한 대학생의 진심. 우리 사는 세상이 참으로 뒤숭숭한데 별일들 없으십니까… 정말이지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겠습니까… 청춘이라는 혈기에 싸우자고 덤비는 투도 아니고 교조적으로 가르치려는 재수 없음도 아니고 솔직함을 특기로 쏘아올린 화살은 자로 잰 듯 정직하게 날아와 정확하게 내 환부를 관통하고 말았습니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내 부끄러움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물우물 쏟아져 나오려는 말을 어떤 방식으로 뱉을까 고민하던 한 청년을 상상하다 보니 그리 된 듯합니다. 문구점에 들러 종이를 사고 펜을 고르고 벽을 탐하고 테이프를 뜯고… 용기와 더불어 성실함, 남자가 내게 고백을 해올 때 가늠하는 덕목이라면 대입들 되실랑가요.
-김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