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
신 없는 성당.
외로움의 성전.
언어는
시름시름 자란
외로움과 사귀다가 무성히 큰 허무를 만든다.
외로움은 시인들의 은둔지.
외로움은 신성한 성당.
시인은 자기가 심은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에 목매달고 죽는 언어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
시인은 1인 교주이자
그 자신이 1인 신도.
시는 신이 없는 종교.
그 속에서 독생(獨生)하는 언어.
시은(市隱)하는 언어.
나는 일생 동안 허비할 말의 허기를 새기리라.
-조정권 (1949~)
시란 무엇인가.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언어와 세계관을 가지고 저마다의 언어의 집을 짓는 한 이 질문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견고하고 서늘한 사유와 정신 세계를 보여온 시인은 자신의 시를 홀로 존재하는 독생(獨生)의 언어이고 세속 속에서 은둔하는 시은(市隱)의 언어라고 정의한다. 독생의 언어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은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이고 신(神)이 없는 성당이며 또 외로움의 성전이다. 시인은 그 신성한 외로움에 은둔하지만 그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자신이 교주이고 성도인 신 없는 종교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언어에 복무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시인의 언어가 세상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세속의 중심에서 깊이 침잠하여 세상의 허기를 담고 새기는 것이라는 점이다. 세속과 신성, 현실과 언어가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라는 일원론적인 사유와 시론. 독생하는 시은의 시를 찾는 시인의 치열한 자기 갱신이 차갑고 높고 강인하다.
-곽효환
시는 '누군가에게 말걸기'라고 한 안도현도 있고
' 어느날 시가 내게로 왔다''는 파블로 네루타도 있고,
시는 신의 언어를 인간이 받아적은 것이라는 시인도 있다.
플라톤이었던가 '시'는 창조영역이므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시가 안될 때 나는 종교영역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승려나 신부처럼 자기를 끌어올리는 정진말고는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시절 쯤이었을 것이다.
시 수업시간에 시인께서 시가 뭐냐고 물었을 때
"짝사랑" 같다고 했던 적이 있다.
꿈적도 않는 벽, 금오산성 벽 같아서
쳐다는 보지만 사랑은 하지만 더 이상은 허락않는
그래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언컨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의식이 깨어 있는 동안은
'은둔지'라는 시가 공감간다.
은둔지에서 개척해야 하는 영역
그렇지만 그 은둔지는 누군가에게 내어주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짝사랑은 짧다는 데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영원히 요원한 일일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