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바닥

구름뜰 2014. 4. 29. 09:38

 

 

그는 지금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밀려내려갈 곳이 없으므로

이제 박차고 일어설 일만 남은 것 같다

들끓는 세상이 잠시 식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갈증은 그런 게 아니다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가

여기가 바로 밑바닥이구나 싶을 때

바닥은 다시 천길 만길의 굴욕을 들이민다는 것을

굴욕은 굴욕답게 캄캄하게 더듬어 온다는 것을

그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어보지만

스스로를 달래기가 그렇게 쉬운 게 정말 아니다

그는 바닥의 실체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골똘히 생각해온 듯하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진 것은 아니지만

바닥이란 무엇인가

털썩 주저앉기 좋은 곳이다

물론 그게 편안해지면

진짜 바닥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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