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등단 50주년인 시인 정현종씨가 열 번째 신작 시집(가제 ‘그림자에 불타다’)을 낸다. 즐겨 찾은 국립중앙박물관 내부, 그의 머리 쪽에 빛이 떨어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1965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올해가 등단 50주년이다. 그에 맞춰 열 번째 새 시집과 산문집 등 출판사 두 곳에서 무려 일곱 권의 책을 낸다. 좋아하는 네루다와 로르카의 번역 시집, 각종 산문집과 시론집 등 많은 책을 냈지만 새 책을 내는 일은 늘 설렌다.
그의 시 세계는 가벼움과 무거움, 행복과 고통 등 우리 마음 속의 이항대립을 하나로 녹여내는 상상력의 연금술, 쓰러지는 법 없이 통통 튀는 탄력(彈力)의 시학(詩學),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초월의지 등으로 요약된다.
그런 추상적인 이해 없이도 ‘사람이/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중) 같은 구절로 시작하는 쉽고 감각적인 그의 시편들은 많은 이들의 애송 목록에 올라 있다.
지난 6일 정씨를 만났다. 그의 또 다른 산책코스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다.
소감을 묻자 그는 “숫자로 50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동안 뭘 했느냐가 중요할 텐데 워낙 모자란 사람이 많은 일을 겪고 느끼며 더 풍부하게 된 것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인생 경험이 선물한 지혜가 ‘변한’ 부분이라면 좋은 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인, 따라서 ‘변하지 않은’ 부분이다.
78년 두 번째 시집 『나는 별아저씨』(문학과지성사)에서 그는 ‘詩=대답할 수 없음에 대한 변명(그 가장 탁월한 의미에 있어서). 그리고 가능한 대답 중 최선의 길’이라고 쓴 바 있다.
을미년의 정씨는 “시가 뭐 하는 거냐, 시인은 뭐 하는 사람이냐, 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직 최종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 잠정적인 답은 뭔가.
“시는 결국 넓은 의미의 사랑,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시 쓰기는 우정의 확산 같은 거다. 나는 요즘 남이 덜 괴로우려면 내가 더 괴로워야 하고, 내가 덜 괴롭고자 하면 남이 더 괴롭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는 그런 정서적 유대에서 나온다. 그 유대는 진실의 가혹성에서 비롯되고….”
- 진실은 가혹한가.
“그렇지 않나. 사건의 진실, 사건의 진실이 갖는 의미의 진실, 정서적 진실, 우리 앎의 인식적 진실 등 진실은 언제나 우리 예상을 벗어나 놀랍고 당혹스럽다. 독일 시인 릴케는 그래서 ‘삶의 구성요소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 산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정씨는 “시는 마치 코뿔소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돌진하는 이 세계에서 잠깐 멈춰 서 주변을 성찰하는 일, 앵무새처럼 진부하게 반복되거나 불순한 목적으로 내뱉은 말들에 휘둘리는 세상에 신선한 언어를 공급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살 만한 이유를 찾는 게 시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시의 기능은 삶의 조건 자체가 살 만하게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씨의 시업(詩業) 50년이 결승선 통과가 아니라 새롭게 출발하는 반환점이어야 하는 이유다.
정씨는 “시가 써지는 깨달음이나 감정적인 순간은 앞으로 점점 줄지 않겠나. 하지만 많이 쓴다고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현종=1939년 서울 출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사물에 대한 풍요로운 상상력으로 한국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사물의 꿈』 등 시집 9권. 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네루다 메달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