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자나 깨나 성경에 그 모든 외로움을 묻어가며 성화(聖畵) 구성에 나날을 보냈으며 전쟁의 불안과 슬픔 속에서도 조용히 성화의 줄거리를 묵상하였다.”
서울미술관 전시장 2층 들머리에 있는 안내문구다.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 화백의 아내 우향(雨鄕) 박래현(1920~76) 화백이 쓴 글이다. 전시장에선 운보의 30점 연작 ‘예수의 생애’ 전체를 완상할 수 있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국인의 얼굴을 한 예수를 그린 역작이다. 6·25 때 군산에 피란을 내려왔던 운보가 신약성서의 주요 대목을 우리 풍속화 안에 녹여 놓았다.
운보의 ‘예수의 생애’ 연작 중 ‘최후의 만찬’.
안병광 회장은 운보를 “내 생애 최고의 화가”로 꼽는다. 그가 운보의 ‘최후의 만찬’ 앞에 섰다. “대한민국에 저만한 작가가 있는지 거꾸로 물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전 세계 최고라고 봅니다. 60여 년 전에 ‘황인종 예수’가 나왔잖아요. 얼마나 선구적입니까. 밥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제자들을 보세요. 세계 어느 미술가도 예수를 운보처럼 표현하지 못했습니다.”안 회장은 중국 화가 쩡판즈(曾梵志·51)가 그린 ‘최후의 만찬’ 얘기도 꺼냈다. 2013년 10월 아시아 현대미술 역사상 최고가인 250억원에 낙찰된 작품이다. 예수와 12명의 제자가 붉은 넥타이를 맨 젊은 공산당원들로 묘사됐다.
“미술을 돈으로 평가할 수 없겠지만 운보가 쩡판즈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운보는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종합예술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였어요. 예수의 고난과 우리 민족의 비극, 얼마나 잘 맞아떨어집니까. 그게 예술의 힘이죠.”
- 1월 17일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