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사

반성

구름뜰 2015. 6. 8. 09:09

 

 

 

나는 참 잘못 살았다. 예술은 반드시 진리 혹은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일종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하나가 진실 전체를 밝혀주지는 못하더라도 "코끼리는 기둥이다" "코끼리는 벽이다" "코끼리는 굵은 막대다" 식의 부분적 진실을 말함으로써 전체 진실이 드러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예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멈추지 않고, 또 치열하게 그것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한 노력을 멈출 때 예술은 끝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나는 작품에 임할 때마다 거대 담론에 매달렸다. 우주와 세계 역사에 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인간 존재와 사회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올바른 사회는 어찌해야 하는가,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또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등의 섣부른 생각을 일방적으로 쏟아냈다. 물론 후회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만이 길이라고 고집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름을 얻기까지 했다. 작가로 데뷔한 것은 물론, 여기저기 불려다녔고 수차례 상도 받았다. 수많은 연기자들이 내 생각이 담긴 인물을 무대에서 창조해냈고, 또 관객들은 내가 만들어낸 세계와 전망에 동의하거나 부정했고, 때로는 감동을 받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내 작품을 분석했고, 작가인 내 의도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오만해졌다. 그리고 즐겼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갔다. 젊은 날 자그만 훈장에 연륜의 때가 묻은 것이다. 역할도 조금씩 커져갔다. 따르는 후배와 제자들도 생겼다. 그러니 내 일상의 대부분이 훈계하고 가르치는 일로 가득해졌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선생이며, 선배라고 자신했다. 그러니 사람만 만나면 나만의 주장을 늘어놨다. 그리고 언제나 떳떳했다. 왜냐하면 나는 늘 거대 담론에 비추어 틀리지 않았기에 작고 미세한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딘가 허망했다. 거듭 진리와 진실을 외쳤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으며, 나 역시 그렇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이 수행해야 할 일이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의 또 다른 역할, 그리고 그 역할을 하는 예술가로서 내 모습이 그리워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거대 담론만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예술의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그건 작고 사소한 일상이지만, 소중한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 길로 갔음에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이 길을 찾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겟다. 그리고 깨달았다. 거대 담론으로 외칠 때는 타인에게 분노하지만, 미세 담론으로 속살일 때는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는 것들.

 

그와 같은 심정으로 이제 사람들에게 속삭이고자 한다. 무조건적 지지요. 칭찬이다. 그리고 격려이며 위로다. 힘든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그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니까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 연설이나 사회적 웅변이 아닌, 따뜻한 예술의 속삭임이라면 더욱 위안이 되리라. 그리하여 나는 다짐하였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예술가가 되리라고, 아니면 최소한 그런 예술행정가가 되리라고.

 

그러나 어쩌랴. 다시 젊어져 새로 인생을 살더라도. 여전히 잘못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거대 담론에 휩싸여 진리와 진실을 찾게노라고 열정의 나날을 보내는..., 그게 인생이다.

-최현묵 대구 문화예술회관 관장

 

 

 

  오늘자 영남일보 '아침을 열며' 기사다.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매여 살다가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

시점이 오고

그래도

반드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가 또 너무 반드시 였던가

싶기도하고

 

답 없는데 답 찾는 것 같은

살이 살이들.

 

실존만이 성스러운 일인가 싶다가도

실존이 이리 남루해서야 싶을 때도 있고, 

 

답 없다고 찾지 않아도 안되고

찾아서 결국 얻어낸 것이 답 없다걸 알고

답없는 줄 알고 살면 잘 사는 건지.........,,      

 

원,

답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