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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 감금된’시인 ‘신라’에 사로잡히다

구름뜰 2015. 8. 28. 09:57

① ‘詩에 감금된’시인 ‘신라’에 사로잡히다

 

■ 시인 이성복을 경주에서 만나다

‘절망에서 절정을 낚고 싶은’시인

 

 

 

 

 

 

 
사람의 편이 아니라 기꺼이 ‘사물’의 편에 선 이성복 시인. 1977년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통해 ‘정든 유곽에서’란 시로 등단한 이성복 시인. 의미보다 대상에 감춰진 이미지를 바람처럼 펼쳐가는 그의 혼령스러운 눈매는 독일의 소설가 카프카를 빼닮았다.
40년을 개미처럼 살아온 소시민 K. 그의 말에는 ‘형용사’가 없다. 표정은 늘 영수증 같다. 9시뉴스 보고 나면 하품 연발하며 안방 침대 위로 올라간다. 계절이 어떻게 오가는지도 세상사에도 통 관심이 없다. 오직 일이 ‘구원’이다. 객기·치기도 없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의 나날이다. 사랑도 모른 채 결혼했다. 독서도 영화도, 좋아하는 노래도 없다. 가족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그런 K가 생애 첫 효도관광에 나섰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단애(斷崖) 앞에 섰을 때였다. K가 아내 몰래 울먹거린다. ‘사는 게 참 허망하네!’그가 왜 ‘허망’이란 단어를 토해냈을까? 혹시 K의 가슴에 ‘시(詩)’란 바이러스가 침투한 걸까.

누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K에게 선물해주었다. 그 대목에서 칠레 출신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가 내게로 왔다’의 한 구절도 낭송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하략)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든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일 포스티노’까지 보여주었다. K는 ‘허망’의 실체를 알았고 귀국하자마자 곧장 시집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갔다. 그는 훗날 시인이 됐을까?



이성복 시인(64).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국내 시인이 가장 인정하는 시인이다. 유명한 게 아니라 진정성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다. 시 이외의 다른 전리품에 별 욕심이 없는 탓인지도 모른다.

1982년 대구로 내려왔다. 33년째 대구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지역 시인에게조차 가장 ‘먼 존재’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으로 당시 문학청년에게 꿈의 문예지였던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한국 최고의 문학평론가로 불렸던 김현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계관시인’처럼 등장했다. 다들 서울에서 살 줄 알았는데 1980년 첫시집이 나오고 2년 뒤 대구로 내려와버렸다. 계명대 불문과·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치면서 33년간 지역 문단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교수생활에만 충실했다. ‘지역을 너무 얕보고 너무 폼잡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시에 감금된’ 그가 굳이 사람에 연연해 할 이유도 없었다. 사람한테 바랄 게 없었다.

이성복은 대구의 시인도 한국의 시인도 아니다. 그냥 이성복 시인이다. 스스로 ‘시를 낳는 우주’라고 생각한 탓이다. 강호(江湖)가 아니라 고작 ‘강단’에서 제자에게 시 잘 적는 법이나 가르치고 있는 자신이 영 성에 차지 않았다. 2012년 이게 아니다 싶어 모든 강의를 내려놓는다.

그는 요즘 ‘유배생활’을 한다. 유배지는 팔공산 한티재 올라가는 초입, 고시촌처럼 생긴 원룸이다. 방에는 별다른 장식물이 없다. 책과 독서대밖에 없다. 종일 어둑하다. 길 없는 시의 길을 기다린다. 가끔 제자들과 만나 점심을 먹으며 ‘농담따먹기’를 한다.

요즘 그의 절친은 ‘운동’이다. 2003년 10년 만에 5번째 시집이 나올 때까지 시가 노크를 하지 않아 테니스장과 골프연습장에서 ‘운동삼매경’과 밀애를 나눈다.

그는 대략난감한 인터뷰이(Interviewee).

혼돈·광기 때문도 아니다. 그의 언행이 참 ‘혼령(魂靈)’스러운 탓이다. 일상을 ‘초월’로 변주하면서 산다. 낭만·자유·평등주의자·운동가한테도 관심이 없다.

몽상가·연금술사의 포스다. 사람의 편이 아니라 ‘사물의 편’이기 때문이다. 취향도 독특하다. 돌아가신 장인의 혁대도 사용한다. 교수 시절, 중고 프라이드 승용차를 쿨하게 몰았다. 거리에서 산 몇천원짜리 싸구려 선글라스에 더 관심을 둔다. 식탐도 없어 그냥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만족한다. 웬만하면 밥 안 먹고 살자는 주의다. 밑바닥 절망에서 ‘절정’을 낚고 싶은 탓이다. 시인의 기본 에너지가 비극과 비장임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지난 광복절 어름 99세의 노모가 타계했다. 그 어떤 지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평소 경조사를 챙기지 않은 그였기 때문에 그게 ‘허세’로 보이지 않았다. 노모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았다. 타계를 ‘저승으로의 외출’ 정도로 정리해버렸다.

그런 그가 2013년 제7시집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 출간 직후부터 신라정신에 침잠했다. 향가(鄕歌)를 21세기 버전으로 부화하기 시작했다. 임종 때까지 그의 화두가 될 것 같다. 미당 서정주와 다른 새로운 ‘신라연가(新羅戀歌)’가 기대된다.

지난 20일 경주시청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2015 경주엑스포 초청 문학특강에 그가 나왔다. 경주가 순간 ‘신라’로 변해버렸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우리시대의 것과 향가 정서의 결합…그 속에서 영원성을 찾고 싶다”

 

■ ‘신라’에 사로잡힌 시인 이성복을 경주에서 만나다

 

 
좀처럼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는 이 시인이 지난 20일 경주시청에서 문학특강을 하면서 제7시집 래여애반다라를 중심으로 ‘신라정신론’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신라불상전 관람
‘래여애반다라’에 전율
7번째 시집 제목 사용
서정주와 다른 식으로
향가에 접근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카프카와 보들레르…

그가 좋아하는 시인은
김소월·이상·백석
그리고 윤동주·김수영…

어느 날 생각도 못한 ‘신라정신(향가)’에 빙의된다. 2006년 여름이었다. 경주 동국대박물관의 신라 불상전을 보러갔다. 그 전시회의 표제인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감전된다. 래여애반다라는 ‘오다, 서럽더라’란 의미로 신라 향가 25수 중 하나인 ‘풍요(風謠·일명 공덕가)’의 한 구절. 그는 포스터에 적힌 래여애반다라 부분만 오려내 코팅했다. 그걸 부적처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친견했다.

2013년 이 표제가 그의 7시집 제목으로 정해진다.

시집 첫 시와 마지막 시까지 ‘죽지랑을 기리는 노래’와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로 세팅한다. 향가인 모죽지랑가·찬기파랑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시집 제목의 자구를 분리해석한다. ‘래(이곳에 와서)·여(같아지려 하다가)·애(슬픔을 맛보고)·반(맞서고 대들다가)·다(많은 일을 겪고)·라(비단처럼 펼쳐지다)’를 ‘시인의 말’에 포함시켰다. 래여애반다라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닮았다.

그때까지 그가 알고 있는 향가에 대한 상식은 888년(진성여왕 2) 각간(角干) 위홍(魏弘)과 대구화상(大矩和尙)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향가집 제목이 ‘삼대목(三代目)’이란 사실, 신라 가요의 백미랄 수 있는 향가 25수 전체에 대한 최초의 해독은 일본 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1929)지만 양주동 박사의 ‘조선고가연구’(1942)는 오구라의 경지를 넘어 향가 해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는 정도였다.

그는 이날 강연을 통해 신라 정신을 한 시인이 제대로 품기에 얼마나 난감하면서도 외경스러운 대상인가 그 소회를 밝혔다.

“매년 경주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죽고 태어나요. 한 20만명이 될까요. 홍상수 감독의 ‘경주’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부산을 가려다가 경주로 가죠. 왜 그럴까요. 경주는 신라 정신을 알게해 주는 블랙홀인데 남은 유산이 거의 없어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에 걸쳐서 만들어진 일본에 현존하는 고대 일본의 가집(歌集)인 ‘만요슈(万葉集)’, 일본 헤이안시대에 쓰인 일본 최고의 고전소설이자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겐지이야기’, 일본 고대 후기의 수필로 세이 쇼나곤(淸少納言)의 작품인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등 고대 시가에 대한 풍부한 문헌을 갖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불국사, 첨성대, 포석정, 경주 남산 등과 같은 유형자산은 갖고 있지만 인문학적 콘텐츠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경주의 모량, 아화, 중악(팔공산), 원효와 일연의 탄생지인 경산 자인 등과 같은 지명을 통해 겨우 신라를 상상해볼 따름입니다.”

그래도 향가를 통해 신라인과 호흡할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는 향가와 21세기 현대시가 충분히 눈높이 대화를 시를 통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시인의 사명’이라고 여긴다.

“신라 사람들 다 사라져도 포석정 물길은 남아 있지요. 쳐다보던 사람들 다 지나가도 하늘의 애드벌룬은 그대로 떠있지요. 그처럼 우리가 없어져도 ‘시’는 남을 거예요. 뇌수가 빠져나간 해골처럼.”

그러면서 그가 향가스러운 ‘정선’이란 시 한 편을 낭독해준다.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 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깻묵 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이 시는 향가와 무관한 것 같은데 잘 음미해보면 그가 제일 품고 싶어하는 4수의 향가(찬기파랑가·모죽지랑가·제망매가·원왕생가)가 오버랩된 것 같다. 저승으로 간 자를 극진하게 예찬(禮讚)·추모(追慕)하고 제사(祭祀)를 지내고 극락왕생을 소원(所願)하는 맘이 혼융돼 있다.

갑자기 미당 서정주 얘기를 던진다.

“개인적으로 그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개척한 시의 경지를 보면 500년이 아니라 1천년이 있어도 그런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는 힘들 겁니다. 그는 독보적이죠. 향가를 멋지게 스토리텔링했어요.”

하지만 그는 향가를 미당식으로 편곡하고 싶지는 않다.

“제가 향가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제 쪽으로 향가를 끌고 와서 이용했다고 해야 할 겁니다. 향가는 복원할 수도 없고 또 복원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은 망해요. 문화 또한 망합니다. 문화는 망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보들레르가 ‘현대생활의 화가’에서 말한 대로 당대적인 것 안에서 영원한 것을 찾아내는 것, 말을 바꾸면 우리 시대 안에 있는 것을 향가의 정서와 결합시켜보려고 해요. 당대적인 것 안에서 영원한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의 꿈이죠. 그래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 몽영(夢泳)과 환영(幻影)의 시적 연대기

그가 7권 시집의 키워드를 알려준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고통’, ‘남해 금산’(86년)에서는 ‘치욕’, ‘그 여름의 끝’(90년)은 ‘사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93년)은 ‘일상’, ‘아, 입이 없는 것들’(2003년)은 ‘불가능’, ‘래여애반다라’는 ‘생사(生死)’였다.

오는 9월9일 이성복 시론집이 3권으로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다. 꼭 1년 전 열화당을 통해 지난 세월 온갖 매체를 통해 발표된 산문과 대담록, 초창기 미수록 시 등을 출간한 바 있다.

첫 시집은 카프카·니체·보들레르적이었다. 1984년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뒤 김소월·한용운의 연애시에 충격을 받는다. 그걸 토대로 3시집을 펴낸다. 그리고 주역·논어 등 동양철학에 빠져든다. 3시집 이후 세상과 인생을 역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그는 시를 인생에 대한 사상적 탐구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모호함과 수사를 버리기 시작한다. 메타포에서 일상으로 건너간다. 다시 프랑스로 두 번째 유학을 간다. 거기서 서양과 동양 사상을 동시에 품는다. 이 결과가 4시집으로 잉태된다. 그리고 다시 동양에서 차츰 멀어지며 니체와 프로이트로 기운다. 시가 되지 않았다. 10년간 운동하다가 5번째 시집을 내고 지난해 신라에 도전장을 낸 7번째 시집을 낸다. 그 어름에 천체물리학, 사회생물학, 수학 등으로 공부의 각을 더 넓혔다.

 



◆ 내가 좋아하는 시인

그는 어떤 시인을 좋아할까.

무당과 같은 민족적 차원의 한을 품은 ‘김소월’, 치열한 자기반성과 속지 않으려는 정신과 맺어진 요사스러운 재능의 ‘이상’, 청정한 슬픔 속으로 여행과 개인·민족의 비극적 만남의 주인공인 ‘백석’, 폭풍 속의 고요한 불꽃과도 같은 영혼의 떨림이 있는 ‘윤동주’, 영원한 젊음과 당대적 현실의 최초의 발견자인 ‘김수영’을 꼽는다.

그를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리면 세 가지 앙금이 남을 것 같다.

그의 산문과 눈빛에서는 독일의 소설가 ‘카프카’, 시에서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그의 옆모습에서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콧날 정도.

그는 대학 때 ‘카프카와의 대화’란 책 때문에 카프카를 교주로 영접한다. 공자가 가죽끈이 3번 끊어지도록(위편삼절) 주역(周易)을 탐독했듯이 그 대화록을 무려 100번 이상 읽고 또 읽었다. 카프카를 닮기 위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복습했다. 어느 날 그의 눈빛이 카프카의 눈빛과 비슷하게 포개진다.

그는 이기적 광기를 제압하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을 장착했다.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 프랑스의 천재 요절 시인 랭보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를 외면했다. 대신 20세기 문명의 암담함을 가장 모던하게 보여준 서사시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의 기운을 입양했다.

어떤 사물이 시로 착상되는 순간 이성복은 사라진다. 순간 그도 무중력에서 중력권으로 진입하는 우주선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밀물처럼 바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진군해오는 시의 도미노. 1976~80년 유성우(流星雨)처럼 쏟아져 내리는 시를 받아내기 위해 365일 24시간 메모지를 붙들고 ‘비상대기’했다. 사물을 몸속으로 끌고 들어와 ‘메타포’(비유 혹은 은유)란 효모를 주입하며 ‘시적 정사’를 벌였다. 시를 위한 ‘발효 과정’이었다. 40여년째 이승 속 저승 같은 나날이다. 너무나 ‘황홀한 고통’이었다. 의무감도 사명감도 아니다. ‘운명’이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③ “詩는 대상편에 서려는 시도…내 문학 지탱 축은 진지함·측은함·장난기”

 

■ ‘신라’에 사로잡힌 시인 이성복을 경주에서 만나다

상주에서 다섯 살 때 상경한다.

‘출세욕’ 때문이다. 경기고에 진학한다. 고2부터 ‘세기말 사조’와 조우한다. 그 틈새에서 생애 첫 시를 잉태한다. ‘꽃핀 아유자의 노래’였다. 남한에서 죽은 간첩의 시신에서 사과나무가 자란다는 초현실주의적 시였다. 경기고 화동문학상에 투고했다. 문예반장이었던 소설가 이인성이 작품 일부를 잘라 교지에 싣는다. 하지만 아직 시마(詩魔)를 정통으로 맞은 건 아니었다.

서울대 불문과에 들어간 건 여학생이 많아서다. 그 학교에 운명을 바꿔놓을 문학평론가 김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시는 뒷전이었다. 국회의원 딸에게 연애편지도 썼다. 웅변반장도 했다. 실존주의철학에 문학이 휘감긴다.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플로베르 등을 만나면서 이념보다 문학이 한 수 위란 걸 절감한다. 그 자양분이 점차 시로 건너뛴다.

그에겐 시의 사부가 없다. 있다고 하면 그에게 먼저 관심을 보인 문학평론가 김현 정도다. 김현은 ‘자객’ 같은 이성복의 시를 읽고 보고싶어 했다. 그의 친구를 통해 시를 가져오라고 부탁한다. 그는 캘린더 수첩에 정서해서 김현의 연구실을 찾는다. 그는 시인이 될 줄 전혀 예감하지 못 한다. 대학문학상, 신춘문예에도 한 번씩 낙방했다. 77년 ‘정든 유곽에서’가 ‘문학과 지성(문지)’을 통해 발표된다. 당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있던 문지 사무실에 첫발을 내디딘다.

38년이 지났다. 그는 이제 시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 정작 시인들이 다른 시인의 시를 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강연장에서 누가 질문을 했다. ‘어떤 선생이 좋은가’라고. 그는 대답했다. 사람 믿으면 지옥 갑니다. 선생 믿지마세요. 선생이 거울이라고 하는데 요즘 선생은 크게 세 종류입니다. 표면이 울퉁불퉁해 난반사되는 거울, 때가 너무 많이 묻은 거울, 뒷면 수은이 벗겨진 거울입니다. 저도 믿지 마세요. 대신 죽은 사람 중에서 골라봐요. 제 사부는 카프카입니다.”

그는 ‘꽃에 이르는 길’이라는 소책자를 지인에게 선물로 잘 나눠준다. 그 제목은‘풍자화전(風姿花傳)’을 쓴 제아미(世阿彌)의 노(能)의 미학에 관한 짧은 글의 제목인 ‘지화도(至花道)’를 염두에 뒀다. 꼭 ‘이성복 시 창작 아포리즘’ 같다. 내용은 대부분 글쓰기와 생사 문제 해결에 지침이 되는 것들로, 예술의 목적과 방법, 태도에 관한 문장과 불교와 힌두이즘에 관련된 구절들이다. ‘꽃’이란 예술의 궁극적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그 경지를 상상(上上)에서부터 하하(下下)까지 총 아홉 단계로 분류한다.

최고의 경지, 상상은 어느 단계일까. 그는 ‘신라야반일두명(新羅夜半日頭明)’으로 본다. ‘신라의 한밤중에 해가 밝게 빛난다’는 경지다. 이는 인간의 분별을 뛰어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다. 하급의 경지인 동일성과 차별성의 미학이 분별망상의 현실계에 속해 있다면 이것은 현실의 지평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무경계(無境界)’의 미학이란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평론가 김현의 관심 받았지만
젊은 날 시인이 될줄 예감못해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은 시대
시인은 다른 시인의 시 안읽어
‘시의 시대 종말’이 안타까워

인간 분별 뛰어넘는 不立文字
무경계 미학이 시의 최고경지

시인은 끝까지 시 뒤에 숨어야하고
시는 비유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평범한 것을 항상 귀하게 생각하라


이성복이 말하는 이성복의 시론

시인은 딴따라예요. 항상 상 엎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바닥을 치는 잡놈이어야 하고, 남에게 쪽팔리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돼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해요. 그렇지만 죽기 전에 미리 죽으면, 죽을 때 안 죽죠.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있음’의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있음-없음-있음’ 대신, ‘없음-있음-없음’의 구조를 취한다면, 부활의 신비나 극락왕생같은 내러티브 없이도 생사를 건널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진지함, 측은함, 장난기 이 세 가지가 지금까지 제 문학을 지탱해온 축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 진지함이 없다면 진실에 대한 지향이 없을 테고, 측은함이 없다면 윤리적 책임감 같은 것이 없을 테고, 장난기가 없다면 예술가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셋 중에서 어떤 사람은 진지함은 넘치는데 자비심이 없다든지, 자비심은 있는데 장난기가 없다든지, 장난기는 있는데 측은지심이 없다면, 예술로서나 인생으로서나 만족스러울 수 없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카프카의 말이 있어요. ‘당신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세상 편을 들어라’. 이 말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원칙 같아요. 어떤 일에서도 자기 편을 들지 않고 세상 편을 들 때, 인생에서나 문학에서나 진실함, 올바름, 아름다움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시는 자기를 불리하게 하려는 거예요. 꼭 불리하게 만든다기보다, 억지로라도 대상 편에 한번 서보려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세 가지 일이 있다고 하지요. 나의 일, 남의 일, 신(神)의 일. 여기서 신의 일이란 자연법칙을 의미해요. 태어나면 죽어야 하고, 잎이 나면 떨어져야 하는 게 신의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늘 자기 일은 내버려두고, 남의 일과 신의 일에 시비를 건다고 해요.

어떻든 시 쓰는 사람이 시 속으로 들어와 자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인형극을 보면 인형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 같지만, 막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실패한 시는 인형 조작하는 사람이 밖에 나와 관객하고 직접 말하는 것과 같아요. 시인은 끝까지 시 뒤에 숨어 있어야지, 독자 앞에 나오면 바로 죽어버려요. 햇빛을 쬔 드라큘라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시는 고장난 변기의 레버를 내리거나, 체인 벗겨진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아요. 뭔가 저항하는 느낌이 안 나잖아요. 그 느낌이 없으면 시가 아니에요.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예술은 불화(不和)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나이 들어 좋은 글을 쓰는 건 정신이 젊다는 증거예요.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진실도, 거룩함도 다 뒤집어져요.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절망의 자리에서 서 있어야 해요.

시인 줄 알고 빠지는 함정들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비유가 많아야 시가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시의 비유는 피상적이고 장식적이에요. 다른 함정은 시적인 정서가 따로 있는 줄 아는 거예요. 방금까지 깔깔거리던 사람도 시 쓰라고 하면 금세 그리움, 외로움, 괴로움 같은 폼을 잡아요. 마지막 함정은 시적 화자와 산문적 화자를 혼동하는 거예요. 산문에서는 화자가 떡 버티고 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반해 시에서 화자는 모든 재량권을 ‘말’에게 주지요. 뭐든 바깥으로 꺼내 자랑하려 하지 말고 숨겨야 해요. 그래야 힘이 있어요. ‘의금상경(衣錦尙絅)’이라는 말이 있지요. 비단 옷 위에 삼베옷을 껴입는다는 거예요. 힘 좀 있다고 아무 때나 힘자랑하면 동네 깡패밖에 안 돼요. 뭐 좀 안다고 자랑하면 독자가 웃어요.

낚시로 치면, 지렁이 미끼 끼우는 게 첫 행이에요. 그 미끼를 작은 물고기가 낚아채는 게 둘째 행이고, 그 작은 물고기를 큰 물고기가 무는 게 셋째 행이에요. 낚시꾼이 낚싯줄만 흔들지 않고 지켜보면 큰 물고기들이 알아서 와서 걸리는 거예요. 자기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채고, 자기 힘으로 벨트를 돌리려 하니 어렵지요.

사람 죽으면 관 짜서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흙 떨어뜨리는 느낌, 그 느낌이 시에 내려올 수만 있다면 그럼 다 된 거예요. 피 안 흘리면서, 흘리는 것처럼 사기 치는 걸 독자는 제일 싫어해요. 독자를 속일 수는 없어요. 로댕이 그랬다지요. ‘평범한 것은 바보나 대가만이 건드린다.’ 항상 평범한 걸 귀하게 생각하세요. 신기한 건 노리지 마세요. 오래 못 갑니다.

정리=이춘월 호기자

영남일보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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