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사

시인과 정치인

구름뜰 2015. 9. 5. 09:46

이훈범의 생각지도

 

 

 

이훈범 논설위원

 

 

춘추시대 노나라에 한 남자가 홀로 지냈다. 이웃에 과부가 살았는데 밤에 폭우가 쏟아져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과부가 잠 잘 곳을 청했으나 홀아비는 거절하며 문을 닫아걸었다. 과부가 몸을 떨며 말했다. “당신은 유하혜(柳下惠)를 배우지 못했나요?” 홀아비가 답했다. “유하혜는 가능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오. 나의 불가함으로 유하혜의 가함을 배우니 이해하시오.”

 유하혜는 노나라 대부를 지낸 인물이다. 과부의 말인즉슨 이거다. 유하혜가 멀리 나갔다 밤이 늦어 성문 밖에 머무르게 됐다.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숙소 앞에 갈 곳 없는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여인을 방으로 들여 품에 안고 갖옷으로 감싸 몸을 녹여줬다. 그렇게 날이 밝았지만 조금도 예를 벗어나지 않았다. 유하혜의 곧은 성품을 잘 아는지라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른바 ‘좌회불란(坐懷不亂)’의 고사다. 홀아비는 그럴 자신이 없기에 과부를 방에 들일 수 없었다. 이 얘기를 들은 공자가 한마디 안 남겼을 리 없다. “유하혜를 배운 자로서 그를 따를 자가 없도다.” 현대적 기준으로 홀아비의 고지식함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좌회하되 음란해지지 않을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설령 그랬더라도 남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을 자신이 더 없었던 거다. 행하지 않아도 의심을 사는 것만으로도 군자에겐 치욕이라는 교훈이 거기 담겼다.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일진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그들에게 군자의 향기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해도 그들의 몰염치가 풍기는 쉰내가 이 정도일진 몰랐다. 공공기관에 변호사 아들의 취업을 청탁한 의심을 받아도, 로스쿨을 졸업한 딸이 공고도 없이 사기업에 채용된 의혹이 제기돼도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할 뿐 부끄러운 줄 모른다. 집권당 의원인 부친이 당시 공공기관장과 막역한 사이였어도, 당시 장관이던 부친이 문제의 기업과 포괄적 업무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가 나와도 치욕은커녕 한 줌 창피함도 없다.

 변호사 딸을 사기업에 취업시켰다 청탁 사실을 인정하고 퇴사시킨 야당 의원이 그나마 피부가 덜 두꺼워 보인다. 요즘 공분을 일으키는 ‘로스쿨 음서제’만 가지고도 이 정도인데 다른 건 말해 무엇하랴. 어제 자 중앙일보를 보니 이 나라 선량들의 ‘갑질’이 가히 막가파 범죄 수준이다.

 악취로 지면을 더럽히고자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군자의 향기로 주말 아침을 시작해보시라는 뜻이었다. 김사인 시인 얘기다. 엊그제 1단 동정기사로 알려졌지만 그는 올해 창비가 주관하는 만해문학상 수상을 거절했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한다”는 게 상금 2000만원을 물리친 이유다. 비상임이기는 하나 자신이 창비의 편집위원이며, 예심에 국한되기는 하나 만해문학상 추천위원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걸 몰랐을 리 없는 심사위원들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진대 스스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기를 거부한 것이다. 나는 시인이 한 ‘사양의 변’ 중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아주는 건 고마우나 혹여 나중에 욕될지도 모를 일로 자신을 유혹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담박하면서도 결기 있는 태도인가.

 이 나라 정치인들이 시인의 발 뒤꿈치만 따라가도 정치개혁은 절로 되겠다. 정치인만 바뀌어도 나머지 개혁은 절반이 된 거다. 할 건 안 하고 입으로만 70번 외친다고 되는 개혁이 아니란 말이다. 시인에겐 외람되나 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나오는 시구가 정치인들을 향한 욕처럼 들리는 건 나뿐인가.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