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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유하혜는 노나라 대부를 지낸 인물이다. 과부의 말인즉슨 이거다. 유하혜가 멀리 나갔다 밤이 늦어 성문 밖에 머무르게 됐다.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숙소 앞에 갈 곳 없는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여인을 방으로 들여 품에 안고 갖옷으로 감싸 몸을 녹여줬다. 그렇게 날이 밝았지만 조금도 예를 벗어나지 않았다. 유하혜의 곧은 성품을 잘 아는지라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른바 ‘좌회불란(坐懷不亂)’의 고사다. 홀아비는 그럴 자신이 없기에 과부를 방에 들일 수 없었다. 이 얘기를 들은 공자가 한마디 안 남겼을 리 없다. “유하혜를 배운 자로서 그를 따를 자가 없도다.” 현대적 기준으로 홀아비의 고지식함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좌회하되 음란해지지 않을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설령 그랬더라도 남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을 자신이 더 없었던 거다. 행하지 않아도 의심을 사는 것만으로도 군자에겐 치욕이라는 교훈이 거기 담겼다.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일진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그들에게 군자의 향기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해도 그들의 몰염치가 풍기는 쉰내가 이 정도일진 몰랐다. 공공기관에 변호사 아들의 취업을 청탁한 의심을 받아도, 로스쿨을 졸업한 딸이 공고도 없이 사기업에 채용된 의혹이 제기돼도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할 뿐 부끄러운 줄 모른다. 집권당 의원인 부친이 당시 공공기관장과 막역한 사이였어도, 당시 장관이던 부친이 문제의 기업과 포괄적 업무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가 나와도 치욕은커녕 한 줌 창피함도 없다.
변호사 딸을 사기업에 취업시켰다 청탁 사실을 인정하고 퇴사시킨 야당 의원이 그나마 피부가 덜 두꺼워 보인다. 요즘 공분을 일으키는 ‘로스쿨 음서제’만 가지고도 이 정도인데 다른 건 말해 무엇하랴. 어제 자 중앙일보를 보니 이 나라 선량들의 ‘갑질’이 가히 막가파 범죄 수준이다.
악취로 지면을 더럽히고자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군자의 향기로 주말 아침을 시작해보시라는 뜻이었다. 김사인 시인 얘기다. 엊그제 1단 동정기사로 알려졌지만 그는 올해 창비가 주관하는 만해문학상 수상을 거절했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한다”는 게 상금 2000만원을 물리친 이유다. 비상임이기는 하나 자신이 창비의 편집위원이며, 예심에 국한되기는 하나 만해문학상 추천위원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걸 몰랐을 리 없는 심사위원들이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진대 스스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기를 거부한 것이다. 나는 시인이 한 ‘사양의 변’ 중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아주는 건 고마우나 혹여 나중에 욕될지도 모를 일로 자신을 유혹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담박하면서도 결기 있는 태도인가.
이 나라 정치인들이 시인의 발 뒤꿈치만 따라가도 정치개혁은 절로 되겠다. 정치인만 바뀌어도 나머지 개혁은 절반이 된 거다. 할 건 안 하고 입으로만 70번 외친다고 되는 개혁이 아니란 말이다. 시인에겐 외람되나 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나오는 시구가 정치인들을 향한 욕처럼 들리는 건 나뿐인가.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이훈범 논설위원